박노해 시인이 ‘소년’의 얼굴로 돌아왔다. 그의 첫 자전수필 『눈물꽃 소년』은 남도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 자라 국민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평이”라고 불리던 소년시절의 성장기이다. 어두웠고 가난했고 슬픔이 많았던 시절, 그러나 그는 “내 마음에는 어둠이 없었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건넨 질문은 이것이었다. “무슨 힘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나요?” 그는 답한다. “내 모든 것은 ‘눈물꽃 소년’에서 시작되었다”고.
다독다독 등을 쓸어주는 엄니의 손길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이 작은 아이가 웃음과 눈물로 우리의 마음을 휘젓는다. 곱고도 맛깔진 전라도 사투리의 글맛 속에 그가 뛰놀던 산과 들과 바다가 펼쳐지고, 계절 따라 진달래 해당화 동백꽃 향기가 스며오고, 흙마당과 마을 골목과 학교와 장터와 작은 공소와 그를 키운 풍경들이 영화처럼 그려진다. 33편의 글마다 박노해 시인이 직접 그린 연필 그림이 함께 담겼다.
“그인들 그러고 싶어서 그리했겄는가. 누구도 탓허지 말고 자중자애허소.” 죄를 지은 청년을 보듬어 다시 살아갈 힘을 주던 할머니.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읜 평이에게 ‘동네 한 바퀴’를 돌게 하며 씩씩하게 나아가게 한 이웃 어른들. 부당한 일에 “아닌 건 아닌디요” 함께 맞서며 같이 울어주던 동무들. “더 좋은 거 찾으면 날 가르쳐 주소잉” 늘 몸을 기울여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던 ‘수그리’ 선생님. 세상 만물을 지고와 흥겨운 입담을 풀어놓던 방물장수.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치며 잠든 머리맡에서 눈물의 기도를 바치던 어머니. 작은 공소의 ‘나의 친구’ 호세 신부님. 낭만과 멋과 정감이 흐르던 동네 형과 누나들. 외톨이가 되었을 때 “나랑 같이 놀래?” 한 편의 시詩로 다가와 연필을 깎아주던 첫사랑의 소녀까지.
무엇이 한 인간을 빚어내는지, 부모와 아이, 스승과 제자, 이웃과 친구는 어떠해야 하는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눈물꽃 소년』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중히 돌아보게 한다. ‘소년 평이’와 함께 울고 웃다보면 마음의 힘과 영혼의 키가 훌쩍 자라날 책, 『눈물꽃 소년』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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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눈물꽃 소년> ,<올리브나무 아래> ,<아이들은 놀라워라> … 총 40종 (모두보기) 소개 :1957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16세에 상경해 노동자로 일하며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 27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냈다. 이 시집은 군사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가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감시를 피해 쓴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1991 7년 여의 수배 끝에 안기부에 체포되어 24일간 고문을 당했다. 검찰 측은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을 구형했다. “당신들은 나를 죽일 수는 있어도, 나의 사랑은 결코 꺾을 수 없을 것입니다.”(최후진술 중) 사형을 구형받고 환히 웃던 모습은 강렬한 울림을 남겼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34살에 1평 남짓한 감옥 독방에 갇혔다. 1993 옥중시집 『참된 시작』을 펴냈다. 1997 옥중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 1998 7년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가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 하고, 비영리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를 설립해 ‘생명 평화 나눔’의 사상과 실천을 이어갔다. 2003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 “울고 있는 아이들 곁에 있어라도 주고 싶습니다”라며 이라크 전쟁터로 떠나 평화활동을 펼쳤다. 2006 레바논 내 최대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할웨에 〈자이투나 나눔문화학교〉를 세워 난민 아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2010 팔레스타인·아체·쿠르드·버마 등에서 평화나눔을 이어가며, 현장의 진실을 전하고자 카메라를 들었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한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이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펴냈다. 2012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라 카페 갤러리〉에서 박노해 사진전을 상설 개최하고 있다. 22번의 전시 동안 39만 명이 관람했다. 2014 지구시대 좋은 삶의 원형을 담은 「다른 길」展(세종문화회관)을 개최하며 『다른 길』을 펴냈다. 2019 『하루』를 시작으로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6권, 2020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 2021 경구집 『걷는 독서』, 2022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를 펴냈다. 2024 감옥에서부터 30년간 써 온 책, 우주에서의 인간의 길을 담은 사상서를 집필 중이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 〈참사람의 숲〉을 꿈꾸며, 오늘도 시인의 작은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기르며 새로운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수필
'내 어린 날의 이야기’ 33편
“이것은 나를 키운 위대한 선물에 대한 이야기다”
박노해 시인이 이번에는 ‘소년’의 얼굴로 돌아왔다. 엄혹했던 독재 시절, 시퍼렇게 살아있는 시어로 시대와 영혼을 뒤흔든 시인. 노동운동가와 민주화투사로 사형을 구형받고 감옥 독방에 갇혔던 혁명가. 가난과 분쟁의 지구마을 아이들 곁에서 함께 울어주는 친구. 젊은이들에게는 길 잃은 시대에 빛을 찾아 걸어가는 어른이 되어준 박노해 시인. 독자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건넨 질문은 이것이었다. “무슨 힘으로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나요?” 그는 답한다. “내 모든 것은 ‘눈물꽃 소년’에서 시작되었다”고.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수필 『눈물꽃 소년』은 그가 처음으로 전하는 ‘내 어린 날의 이야기’이다. 남도의 작은 마을 동강에서 자라 국민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평이”라고 불리던 소년시절의 성장기이다. 어두웠고 가난했고 슬픔이 많았던 시절, 그러나 “내 마음에는 어둠이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야 나는 내가 받은 위대한 선물이 무엇인지를 실감한다. 그것들이 어떻게 나를 키우고 내가 되게 했는지 나는 이야기해야 한다.”(「작가의 말」 중) 박노해 시인의 일생을 관통한 근원의 힘, 그가 비밀히 간직해온 기억을 우리에게 전하는 이유다.
응축된 시어가 아닌 생생한 산문의 『눈물꽃 소년』. 곱고도 맛깔진 전라도 사투리가 정감 어린 글맛을 선사한다. 다독다독 등을 쓸어주는 엄니의 손길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이 작은 아이가 웃음과 눈물로 우리의 마음을 휘젓는다.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듯한 문장 사이로 그가 뛰놀던 산과 들과 바다가 펼쳐지고, 계절 따라 진달래 해당화 동백꽃 향기가 스며오고, 흙마당과 마을 골목과 학교와 장터와 작은 공소와 그를 키운 풍경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진다. 33편의 글마다 수록된 삽화는 박노해 시인이 직접 그린 연필 그림으로, 글의 풍경 사이를 여행하는 듯 따스함과 아련함을 더한다.
갈수록 독해지고 사나워지는 세상에서
이토록 순정하고 기품 있는 이야기를 기다려왔다
“인간에게 있어 평생을 지속되는 ‘결정적 시기’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소년 소녀 시절이다. 인생 전체를 비추는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의 틀이 짜여지고 저 광대한 세상을 걸어나갈 근원의 힘을 기르는 때. 아직 피지 않은 모든 것을 이미 품고 있던 때.”(「작가의 말」 중) 『눈물꽃 소년』의 배경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모자란 게 많고, 마음껏 읽을 책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자연과 인정과 시간은 충분했고 “순정한 흙가슴의 사람들”이 살아있었다
“그인들 그러고 싶어서 그리했겄는가. 누구도 탓허지 말고 자중자애허소.” 죄를 지은 청년을 보듬어 다시 살아갈 힘을 주던 할머니.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읜 평이에게 ‘동네 한 바퀴’를 돌게 하며 씩씩하게 나아가게 한 이웃 어른들. 부당한 일에 “아닌 건 아닌디요” 함께 맞서며 같이 울어주던 동무들. “더 좋은 거 찾으면 날 가르쳐 주소잉” 늘 몸을 기울여 학생들의 말을 들어주던 ‘수그리’ 선생님. 세상 만물을 지고와 흥겨운 입담을 풀어놓던 방물장수.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치며 잠든 머리맡에서 눈물의 기도를 바치던 어머니. 작은 공소의 ‘나의 친구’ 호세 신부님. 낭만과 멋과 정감이 흐르던 동네 형과 누나들. 외톨이가 되었을 때 “나랑 같이 놀래?” 한 편의 시詩로 다가와 연필을 깎아주던 첫사랑의 소녀까지.
못 배우고 가난해도 인간의 기품이 있고, 서로를 보살피는 관계가 있고, ‘참말’을 할 수 있는 진실한 삶을 살아낸 사람들. 그 속에서 자라난 한 소년의 일화가 담백하고 풍요롭게 펼쳐지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가슴 시린 풍경이 그리움과 소망을 불러 일으킨다.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워지고, 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작가의 말」 중), 더없이 순하고 다정한 『눈물꽃 소년』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폭풍을 잠재우고 맑고 깊은 힘을 채워줄 것이다.
“힘든 거 알아. 나도 많이 울었어.
그 눈물이 꽃이 되고 그 눈빛이 길이 될 거야.”
박노해 시인이 희망과 용기의 ‘눈물꽃’을 건넨다
“성취만큼이나 잃어버린 것 또한 크고 깊어서, 고귀한 인간 정신과 미덕은 땅에 떨어져 내렸고, 희망의 씨알은 유실되고 망각되고 있다. (…) 지구의 오직 그 장소 그 시간에 내가 겪은 세상과 시대, 내가 만난 인간의 분투와 경이를 기억하고 전승해야”(「작가의 말」 중)하는 이유로 써 내려간 『눈물꽃 소년』은 현대사의 굴곡을 온몸으로 살아낸 박노해 시인이 깊은 성찰을 통해 길어 올린 기억의 유산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너무 빨리 잃어버린 원형의 것들, 인간성의 순수”를 일깨우며, 오래도록 품어온 ‘희망의 불씨’를 이야기에 담아 건넨다.
"잘 몰라도 괜찮다. 사람이 길인께.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 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이니께."(12p 「물어물어 찾아간 길」) “눈이 총총할 때 좋은 것 많이 담고 좋은 책 많이 읽고, 몸이 푸를 때 힘 쓰고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거제이. 좋을 때 안 쓰면 사람 베린다.”(70p 「동네 한 바퀴」) "남 보고 사는 건 끝없는 모자람이제. 그것이 만병의 원인 아니겄냐. 꿈을 딱 정해놓으믄 뜻이 작아져 분다. 큰 뜻을 먼저 세워야제. 그라고 성실하고 꾸준하면 되는 거제."(217p 「꿈을 찾아」) “힘 빼! 온몸에 힘을 빼고 텅 비우면 절대로 안 가라앉는다잉.”(144p 「비밀한 그해 여름」)
무엇이 한 인간을 빚어내는지, 부모와 아이, 스승과 제자, 이웃과 친구는 어떠해야 하는지, 오늘의 나를 만든 순간들은 무엇인지,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눈물꽃 소년』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중히 돌아보게 한다. ‘네 안의 소년 소녀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있니?’ 소년 평이가 해맑고 명랑한 얼굴로 달려와 젖은 눈동자로 말을 건넨다. “힘든 거 알아. 나도 많이 울었어. 하지만 너에겐 누구도 갖지 못한 미지의 날들이 있고 여정의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어. 그 눈물이 꽃이 되고 그 눈빛이 길이 될 거야.”(「작가의 말」 중) 읽고 나면 마음의 힘과 영혼의 키가 훌쩍 자라날 ‘소년 평이’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