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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대중가요를 듣고,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는 늘 문화를 고상한 것과 저급한 것으로 나누고 대중 예술을 저급한 축에 끼워놓는다.
이 책은 이제 대중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자세를 긍정적인 자세로, 소극적인 자세를 적극적인 자세로 교정할 것을 제안한다. 말하자면 우리 의식에 팽배해 있는 문화의 이중성을 깨뜨리자는 것이다.
저자인 박성봉 교수의 '대중예술의 미학'이라는 강의는 딱딱한 틀을 깬 파격으로 학생들의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은 학문에서 소외된 대중예술을 미학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독특한 시각을 강의가 아닌 활자로 만나게 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제 1 장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느 대상을 놓고 '나는 이 대상을 예술작품이라고 명명한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 대상은 곧 예술작품이다 - 조지 디키(George Dickie, Aesthetics an Introduction, 1971)
예술 무제한주의 ― 그것은 열려 있는 나눔의 정신
예술이 있는 곳은 사실 자유의 바람이 부는 곳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세상에는 우리를 대신해 그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좋은 예술을 고민하고 선택하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행되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교과서에 실릴 만한 작품들, 청소년 추천도서, 음악회, 미술 전시회, 백과사전, 예술의 역사, 신문이나 잡지의 비평들…… 그러나 이 선택은 강요가 아니다. 강요일 수도 없고 강요이어서도 안 된다. 단지 만남에의 초대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술이라고 무엇을 가리킬 때 우리의 손가락은 손님에게 연회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손가락인 셈이다. 영양소를 균형 있게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편식을 꾸짖고 음식을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음식 맛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제 2 장 대중예술이란 무엇인가
대중예술이란 우리가 "관습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장르들"이다 ─ 러셀 나이(Russel Nye, The Unembarrassed Muse, 1971)
대중예술은 뽕 기운의 예술
대중예술은 대체로 문화적 ― 이를테면 상업적이 아니라 ― 힘겨루기에서 밀려 변두리로 내쫓긴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힘겨루기에서 밀린 그들을 특징짓는 무언가 문화적으로 저급하고 통속적인 기운을 상정한다. 그것을 나는 '뽕의 기운'이라 부른다. 그것이 대중예술의 세계이다. 힘겨루기에서 이겨 품위의 동네에서 사는 것들에서도 뽕의 기운을 느낀다고 겐세이 놓지 말 것. 지금 우리의 관심은 힘겨루기에서 밀린 것들이니까.
제 3 장 뽕의 기운, 그리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대중음악
록 음악은 통속성의 정수이다. 조잡하고, 소란하고, 저속한데다 자신의 통속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단연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현대의 통속성은 낭만주의적 범신론이 현대에 살아난 것이다. ― 로버트 패터슨(Robert Pattison, The Triumph of Vulgarity, 1987)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대중음악
프랑스의 샹송 가수 에디뜨 삐아프의 마지막 공연을 기억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거리에서 노래를 팔아 삶을 헤쳐 나온 작은 여인. 팔다리에 극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면서도 아들 뻘 되는 남자와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리고 죽었다. 그녀가 부른 「La Foule」였나. 왈츠풍의 이 샹송을 부르면서 그녀는 눈을 감고 팔을 흔들며 춤을 춘다. 아직 오십... 제 1 장 예술이란 무엇인가
어느 대상을 놓고 '나는 이 대상을 예술작품이라고 명명한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 대상은 곧 예술작품이다 - 조지 디키(George Dickie, Aesthetics an Introduction, 1971)
예술 무제한주의 ― 그것은 열려 있는 나눔의 정신
예술이 있는 곳은 사실 자유의 바람이 부는 곳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세상에는 우리를 대신해 그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좋은 예술을 고민하고 선택하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행되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교과서에 실릴 만한 작품들, 청소년 추천도서, 음악회, 미술 전시회, 백과사전, 예술의 역사, 신문이나 잡지의 비평들…… 그러나 이 선택은 강요가 아니다. 강요일 수도 없고 강요이어서도 안 된다. 단지 만남에의 초대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술이라고 무엇을 가리킬 때 우리의 손가락은 손님에게 연회장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손가락인 셈이다. 영양소를 균형 있게 섭취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편식을 꾸짖고 음식을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음식 맛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제 2 장 대중예술이란 무엇인가
대중예술이란 우리가 "관습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장르들"이다 ─ 러셀 나이(Russel Nye, The Unembarrassed Muse, 1971)
대중예술은 뽕 기운의 예술
대중예술은 대체로 문화적 ― 이를테면 상업적이 아니라 ― 힘겨루기에서 밀려 변두리로 내쫓긴 것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힘겨루기에서 밀린 그들을 특징짓는 무언가 문화적으로 저급하고 통속적인 기운을 상정한다. 그것을 나는 '뽕의 기운'이라 부른다. 그것이 대중예술의 세계이다. 힘겨루기에서 이겨 품위의 동네에서 사는 것들에서도 뽕의 기운을 느낀다고 겐세이 놓지 말 것. 지금 우리의 관심은 힘겨루기에서 밀린 것들이니까.
제 3 장 뽕의 기운, 그리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대중음악
록 음악은 통속성의 정수이다. 조잡하고, 소란하고, 저속한데다 자신의 통속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단연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현대의 통속성은 낭만주의적 범신론이 현대에 살아난 것이다. ― 로버트 패터슨(Robert Pattison, The Triumph of Vulgarity, 1987)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대중음악
프랑스의 샹송 가수 에디뜨 삐아프의 마지막 공연을 기억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거리에서 노래를 팔아 삶을 헤쳐 나온 작은 여인. 팔다리에 극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면서도 아들 뻘 되는 남자와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리고 죽었다. 그녀가 부른 「La Foule」였나. 왈츠풍의 이 샹송을 부르면서 그녀는 눈을 감고 팔을 흔들며 춤을 춘다. 아직 오십도 안 된 나이에 거의 칠순의 할머니로 늙어버린 얼굴을 하고…… 사진은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이다. 뽕의 기운이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만남으로서의 대중음악은 사랑이다. 뽕의 기운이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이 세상에는 만남을 기다리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노래들이 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만남을 위해 노래하자. 그것이 멈추는 순간이 죽음이다.
제 4 장 뽕 기운의 세 얼굴 - 대중문학
대중문학의 도식성은 어떤 문화의 구성원 사이에서 설사 노골적으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꿈의 구체화라는 점에서 공동체적 문화 산물이다. ― 카웰티(J.G. Cawelti, Adventure, Mystery and Romance, 1976)
시대를 타고 흐르는 뽕의 기운
뽕 기운이 강한 대중문학의 천편일률적인 상투성은 무협의 세계, 추리물의 세계, 웨스턴의 세계, 판타지물의 세계, 공포물의 세계, 첩보물의 세계, 전쟁 액션물의 세계, 공상과학물의 세계, 연애물의 세계 등 다양한 체험의 세계를 이루는 장기판의 규칙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스톱을 쳐봤는지. 처음에 어설프게 느껴지던 고스톱 판의 규칙에 길들여지는 순간 갑자기 떠오르는 고스톱의 인격 같은 것. 바둑판의 19개씩인가의 씨줄, 날줄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갑자기 파란만장한 중원의 싸움터로 변하는 차원 이동. 그래, 나는 지금 차원 이동을 이야기하고 있다.기하고 있다.
제 5 장 표현한다는 것은 밥상을 차린다는 것 - 대중영화
어떤 감독의 영화를 도매금으로 다룰 때는 적어도 그의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 앤드류 튜더(Andrew Tudor, Theories of Film, 1974)
존재의 만남에 권위란 없다
나를 위해 차려낸 밥상을 받는 느낌 ― 이것이 내가 ?존재감?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스크린이라는 밥상 저편에서 나를 위해 땀을 흘리며 밥상을 차리고 있는 존재. 나에게 감독은 이 존재의 상징적인 이름이다. 누가 나에게 영화는 정말로 무엇인가 하고 정색하고 물어도 나는 여전히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영화는 스크린이라는 밥상에 밥과 국과 반찬을 차려내는 것이다.?
제 6 장 사이비 재미와 사이비 감동 - 대중 TV
TV를 시청하고 있을 때 안방으로 또 다른 세계가 스며들어오는데, 이때 우리의 안방은 사라지면서도 동시에 존재하는 기묘한 역설로 존재한다 ― 버나드 샤라트(B. Sharratt, The Politics of the Popular; from Melodrama to Television, 1980)
응어리로서의 재미와 감동
세상의 많은 어머님들이 저녁 설거지를 끝내시고 앞치마로 손을 훔치면서 '아직 시작 안 했냐' 하고 TV 앞에 앉으신다. 그리고 자신의 응어리를 재미, 감동으로 차원 이동시키는 생명심이 작용하는 한 TV 드라마를 보시며 웃고 우신다. 심각한 문제는 더 이상 그러지 않으실 때이다. 응어리가 내면 어딘가에 고착되어버려 더 이상 건드려도 고통만 될 뿐인 상황이면 이제 종교만이 희망일 것이다.
제 7 장 만만함의 미학 - 만화
만화의 이론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예술 형식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새로운 예술 형식들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미적 기준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 모리스 혼(Maurice Horn, The World Encyclopedia of Comics, 1976)
만화의 '만'자는 만만할 '만'자인가?
만화의 만만한 뽕 기운은 일상에서 긴장된 우리의 시각을 무장해제시킨다. 그러면서 일상의 언어로는 건드리기 어려운 우리 내면의 어떤 부분을 툭 치고 간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현이라는 문학평론가는 만화는 문학이라고 했다. 미술평론가 중에 찾아보면 만화는 미술이라고 한 누군가가 있을 법도 하다. 귀를 기울이면 만화예술이라는 표현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만화가 예술이기 위해 만만한 그림을 반성할 필요는 없다. 만화가 예술이기 위해 황당한 내용을 반성할 필요도 없다.
제 8 장 대중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미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 알란 고우완스(A. Gowans, The Restless Art, 1966)
살아 있는 일상 삶의 맥락 속에서 예술
왜 학교에서 배우는 예술이 지금의 모습이어야만 할까? 왜 동네에 컴퓨터게임 학원은 없을까? 아이들이 항상 자발적으로 북적대는 곳이 게임 대여점이나 만화 대여점인데 피아노를 가르치듯이 게임을 가르치는 학원은 왜 없을까? 만화를 가르치는 학원은 왜 없을까? 전기기타를 가르치는 학원은 왜 없을까? 드럼을 가르치는 학원은 왜 없을까? 왜 이런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을까? 왜 힙합hip-hop 춤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예술이 그렇게 다양한데 왜 꼭 지금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만 배워야 할까?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어릴 때 학교에서 가끔 오락시간이 있었다. 그때면 어떤 아이 하나가 사회도 잘보고 재주도 많아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곤 했다. 그런데 선생님의 전형적인 반응은 이랬다. '어쭈구리, 너 공부는 못하는 놈이 그래도 그런 건 할 줄 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더니……' 뭐 이런 식이었다. 그나마 있는 상상력과 감수성마저 싹을 자르고 왜곡시키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너무 상식적인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어릴 때 예술적 상상력과 감수성은 억압되어 구부러지거나 비틀리지 않고 쭉쭉 뻗어나가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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