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연속이 아니라 단절을 통해 이뤄진다한자 성어 중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연구하여 거기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다는 뜻이다. 사실 역사를 살펴 보면 이 말을 실감케 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2000년 전의 그리스 고전 문화를 새로이 발견하고 해석함으로써 학문과 예술의 부흥을 일으킨 운동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이 주장한 정전법(井田法)은 4000년 전 중국 주나라 시대의 토지 제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그뿐인가?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토대를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칸트와 헤겔이 있었겠으며, 고전주의 음악의 엄정한 형식미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낭만주의 음악의 자유로운 표현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정치, 사회, 학문, 예술 등 모든 면에서 '옛 것'은 언제나 '새 것'을 창안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이렇게 옛 것이 새 것을 낳는 토대라는 온고지신의 가르침은 불변의 진리요 상식이다. 그런데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 )은 그 진리와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오히려 그는 옛 것을 완전히 버려야만 새 것이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과학이 발전해 온 역사는 옛 것에서 새 것을 차근차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옛 것을 새 것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과정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 과정은 연속이 아니라 단절이고, 연장이 아니라 비약이며, 진화가 아니라 혁명이다. 그래서 그는 1962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에 <과학혁
명의 구조>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였다.
학제적 연구가
'international'이라는 영어 단어는 보통 '국제적'이라고 번역한다. 여기서 파생된 최신의 단어로 'interdisciplinary'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학제적(學際的)'이라고 번역한다. '국제적'이라는 말이 여러 나라에 걸쳐 있음을 뜻하듯이 '학제적'이란 여러 학문에 걸쳐 있다는 뜻이다.
토머스 쿤은 대표적인 학제적 연구가이다. 쿤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수석으로 졸업한 과학자이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철학, 심리학, 언어학, 사회학 등을 두루 연구한다. 그 덕분에 그는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호킹 같은 뛰어난 물리학자는 되지 못했으나 그 대신 물리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학문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연구를 남겼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바로 <과학혁명의 구조>의 핵심 개념인 '패러다임(paradigm)'이다. 패러다임은 원래 언어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데, 쿤은 이 개념을 과학사 연구에 활용했다. 그가 널리 퍼뜨린 패 러다임의 개념은 나중에 철학과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과 예술 분야에까지 폭넓게 원용되는 용어로 자...
역사는 연속이 아니라 단절을 통해 이뤄진다한자 성어 중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연구하여 거기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다는 뜻이다. 사실 역사를 살펴 보면 이 말을 실감케 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2000년 전의 그리스 고전 문화를 새로이 발견하고 해석함으로써 학문과 예술의 부흥을 일으킨 운동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이 주장한 정전법(井田法)은 4000년 전 중국 주나라 시대의 토지 제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었다.
그뿐인가?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토대를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칸트와 헤겔이 있었겠으며, 고전주의 음악의 엄정한 형식미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낭만주의 음악의 자유로운 표현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정치, 사회, 학문, 예술 등 모든 면에서 '옛 것'은 언제나 '새 것'을 창안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이렇게 옛 것이 새 것을 낳는 토대라는 온고지신의 가르침은 불변의 진리요 상식이다. 그런데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 )은 그 진리와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오히려 그는 옛 것을 완전히 버려야만 새 것이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과학이 발전해 온 역사는 옛 것에서 새 것을 차근차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옛 것을 새 것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과정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 과정은 연속이 아니라 단절이고, 연장이 아니라 비약이며, 진화가 아니라 혁명이다. 그래서 그는 1962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에 <과학혁
명의 구조>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였다.
학제적 연구가
'international'이라는 영어 단어는 보통 '국제적'이라고 번역한다. 여기서 파생된 최신의 단어로 'interdisciplinary'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학제적(學際的)'이라고 번역한다. '국제적'이라는 말이 여러 나라에 걸쳐 있음을 뜻하듯이 '학제적'이란 여러 학문에 걸쳐 있다는 뜻이다.
토머스 쿤은 대표적인 학제적 연구가이다. 쿤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여 수석으로 졸업한 과학자이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철학, 심리학, 언어학, 사회학 등을 두루 연구한다. 그 덕분에 그는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호킹 같은 뛰어난 물리학자는 되지 못했으나 그 대신 물리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학문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연구를 남겼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바로 <과학혁명의 구조>의 핵심 개념인 '패러다임(paradigm)'이다. 패러다임은 원래 언어학에서 사용되는 용어인데, 쿤은 이 개념을 과학사 연구에 활용했다. 그가 널리 퍼뜨린 패 러다임의 개념은 나중에 철학과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과 예술 분야에까지 폭넓게 원용되는 용어로 자리잡게 된다.
1952년부터 하버드 대학교에서 과학사를 강의하던 쿤은 1957년에 첫 저서인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발간한다. 이 저서는 지동설을 체계화한 코페르니쿠스에서부터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까지 근대 자연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 우주론의 혁명적 발전 과정을 사상사적 측면과 결부시켜 다루고 있는 책으로, <과학혁명의 구조>의 예고편 역할을 했다.
이후 쿤은 캘리포니아 대학, 프린스턴 대학, 매사추세츠 공대 교수로 일하며, 강의와 연구, 저술 활동에 주력한다. 특히 매사추세츠 공대에서는 과학사가 아닌 언어학 및 철학 교수로 재직함으로써 학제적인 연구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준다. 쿤은 1987년 교수에서 은퇴한 이래 현재까지 <과학혁명의 구조>의 후속편을 집필하고 있다.
정상과학과 패러다임
쿤의 저서 제목에 나온 과학혁명이란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그럼 패러다임이란 뭘까? 패러다임은 이를테면 기본형 또는 표준형이다. 동사의 기본형에서 온갖 변형과 활용형이 파생되듯이, 하나의 과학적 패러다임에서 여러 가지 과학적 인식과 모델들이 나온다.
그뿐 아니라 과학적 이론, 그리고 그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 기술과 장비, 이론을 구성하는 논리, 나아가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관념과 가치관, 관습까지도 모두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느 학문 분야에나 고전이 있듯이 과학에도 고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피지카>, 뉴턴의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 라부아지에의 <화학> 등 인류 역사의 과학적 고전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이유를 쿤은 이렇게 말한다.
`[과학의 고전들은] 일정한 시기 동안 특정한 학문 분야에서 적절하고 타당한 문제와 해결 방법 들을 다음 세대의 연구자들에게 암묵적으로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저술들이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학자들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학자들에게 새로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남겨 놓을 만큼 유연하다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단순히 한두 가지의 새로운 과학적 발견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과학적 사고의 틀 자체를 한꺼번에 바꾸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그와 동시에 패러다임은 모든 과학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고 해결 방식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상과학의 시기에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유지되면서 평온하게 과학이 발달한다. 이 시기의 과학적 발견과 이론은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증명하고 보충하며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예를 들어 2세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탄생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1000년 이상이나 천문학 분야에서 정상과학의 발달을 이끌었다. 학자들은 천동설을 토대로 하여 일식과 월식을 정확하게 예측했으며, 평범한 사람들은 해와 달,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일정한 궤도를 가지고 운동하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하늘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물론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있다 해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천동설은 단지 하나의 패러다임인 것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였으니까.
이렇게 단일한 패러다임이 진리로 군림하는 시기에는 비록 다소 어긋나는 사실이 있다 해도 그 패러다임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프톨레마이오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한 적이 있었으나 그의 이론은 천동설에 완전히 패배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더구나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는 일부터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전문 과학자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쿤은 산소의 발견을 예로 든다. 산소는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그것이 '발견'된 것은 18세기 말의 일이었다. 산소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과학자들은 물체를 가열하면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에서 열소가 방출된다고 믿었다. 즉 당시의 패러다임에서는 플로지스톤이라는 가상의 물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빛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빛을 파동이라고만 본 19세기까지의 과학자들은 빛도 파동인 이상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무 물질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 속에서도 빛은 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빛의 매체로 에테르라는 가상 물질을 고안했다. 당시의 패러다임에서 빛은 파동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에테르라는 물질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가상으로 만들어 내야 할 정도로 정상과학의 시기에 패러다임의 힘은 막강하다.
과학혁명의 시기
하나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정상과학의 시기라면, 과학혁명이란 그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뜻한다. 그 과정을 진화나 발전처럼 온건한(?) 용어가 아닌 '혁명'이라는 말로 부르는 이유는 앞서도 말했듯이 그것이 온고지신의 미덕을 보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뉴턴의 천문학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양자는 '뿌리에서부터' 서로 달랐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눈에 보이는 천체의 운동이라는 현상을 가지고 천동설을 구성했지만, 뉴턴은 운동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의 원인을 문제삼았다.
그에 따르면 행성계에서는 운동의 현상보다 그 원인, 즉 운동을 일으킨 힘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눈으로 보기에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중심으로 고찰하면 지구보다 33만 배나 무거운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뉴턴 역학은 천동설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관점 자체를 (현상에서 원인으로) 바꿈으로써, 즉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함으로써 천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바뀌고 나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토대를 둔 새로운 발견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마치 그러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천왕성과 소행성대가 발견된 사연이 바로 그렇다.
`1690년부터 1781년 사이에 적어도 17회에 걸쳐 유럽의 유수한 천문학자들이 지금의 천왕성 궤도 자리에서 별 하나를 보았다. 한 관측자는 1769년에 나흘 밤을 연달아 그 별을 보았으나 별의 운행 에 알아 내서 그 정체를 밝혀 내지는 못했다. 12년 뒤 허셜이 손수 만든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그 별을 관측하니 항성으로서는 드물게 뚜렷한 원반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허셜은 새로운 혜성 을 보았다고 발표했다! 한동안 그 별의 운행을 혜성 궤도에 맞추려다가 실패한 끝에 렉셀은 그것이 행성인 것 같다고 제안했다. 천왕성은 이렇게 해서 발견되었다. …… 이렇게 허셜이 패러다임을 약 간 변화시킨 결과 1801년 이후 천문학자들은 짧은 기간에 수많은 소행성들을 발견했다.`
사실 또 하나의 행성이 존재한다는 데 미처 착안하기 전에도 천문학자들은 천왕성을 관측하고 있었다. 다만 당시의 패러다임에서는 그것을 천왕성이라고 규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혁명이 일어나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 전까지 발견된 사실들이 모조리 새로이 해석되며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패러다임이 던진 문제
과학사가답게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수많은 과학적 발견의 사례를 들고 있다. 그 중에는 일부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과학적 설명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 사례들은 쿤이 패러다임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한 것이고, 또 그 자신이 친절한 과학적 설명을 덧붙이고 있으므로 그다지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쿤의 패러다임 개념은 1960년대에 유행병처럼 번져 커다란 학문적 인기를 끌었으나 동시에 많은 학자들로부터 뜻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침내 1969년에는 그 자신마저 패러다임 개념을 철회했으나 그 이후 그 개념은 오히려 자연과학보다도 인문·사회과학, 예술 분야로 널리 확산되었다.
그러나 사실 쿤의 패러다임이 발표되기 이전에도 19세기 이래 철학적 변화의 흐름 속에는 패러다임에 해당하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찍이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속에서는 자본주의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으며,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바슐라르는 1938년에 과학의 발전은 연속이 아니라 단절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이론을 내놓은 바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쿤의 패러다임은 그러한 철학적 사상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그것을 대중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남경태(전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