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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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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가 김숨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2012년 4월호부터 11월호에 이르기까지 「현대문학」에 총 8회에 걸쳐 절찬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그동안 보여왔던 김숨 특유의 소설세계를 잇는 동시에 작가가 포착해낸 세계와 시선이 더 한층 넓고 깊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김숨은 유령처럼 살아갔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복원해낸다. 그 '어머니'는 우리가 그간 '훼손될 수 없는 영역'으로 규정했던 것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경제적 가치에 의해 침윤되어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오늘날의 현실 자체와 대면하게 한다. 적을 만났을 때 카멜레온의 일시정지처럼 화석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는 시어머니,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일회용품처럼 쓰이고 버려지는 저임금의 하위 서비스직 종사자 며느리, 자신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아들이자 남편, 그들의 가족 해체의 과정을 기묘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1. 침이 마를 때 : 김숨의 소설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과 그들의 표현되지 않았던 심연을 기록한다. 지우고 싶었던 과거와 덮어버리고 싶은 현재를 증명하는 존재들을 조심스럽게 우리 앞에 불러온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 불임의 어머니, 쓸모와 가치를 상실한 노인,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인간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이 온전한 개인이기는커녕 가구처럼 그 자리에 붙박인 채 무기물의 생을 견뎌냈음을 여전히 견디고 있음을 반복해서 말한다. 김숨의 소설은 언제나 공감에 앞서 슬픔이 배어 있는 부끄러움을 불러온다. 화석이 된 그들이 바로 우리의 얼굴인 때문이다. 분별할 수 없는 나의 얼굴과 우리의 존재를 그렇게 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서 김숨은 분명 유령처럼 살아갔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복원한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유포한 희생과 헌신의 이미지로 체현되지도, 전통적 의미에서 우리가 상실한 과거와 같은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김숨의 ‘어머니’는 우리가 그간 ‘훼손될 수 없는 영역’으로 규정했던 것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경제적 가치에 의해 침윤되어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오늘날의 현실 자체와 대면하게 한다. 전문대를 나와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을 하고 있는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만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하기를 바라며, 당당히 브랜드 아파트에서 키우고 싶어’ 윗세대 ‘어머니’를 착취한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를 착취하면서 그렇게 진화를 꿈꿔왔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아파트 신축공사로 인해 파헤쳐진 구덩이 속에 들어가 ‘화석인류’임을 스스로 입증하고자 할 때, ‘어머니’의 진화는 인류의 역사에서 있지도 있을 수도 없었음이 판명되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 이 책은 모든 것이 침으로부터 시작되고 끝이 난다. 침의 정상 분비량은 1분당 0.6㎖, 시간당 36㎖, 하루 1ℓ에서 1.5ℓ 정도이다. 그런데 평소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막상 결핍되면 심각한 장애와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 바로 침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나지 않는 존재감”과 “하찮게 취급되는 비중이나 가치”라는 면에서 침과 비슷한 시어머니가 있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근무하던 며느리는 직장에서 해고되자 “입주 보모”처럼 살림과 육아를 전적으로 도맡아주던 시어머니를 내쫓으려 한다. 마치 침처럼 뱉어버리려는 것이다. 사실 시어머니의 침이 마르기 시작한 것은 손자의 이마에 난 상처에 침을 발라주었을 때 며느리로부터 받은 멸시와 모욕 때문일 수도 있다. 며느리는 사막처럼 건조해진 일상과 가족 관계를 초래한 시어머니와 자신은 교배가 불가능하도록 생식적으로 “분리된 종”이라고 생각한다. 종이 진화하면서 분화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자식과 부모사이에서도 이득을 따져야 당연할 만큼 세상이 바뀌었어도, 자신과 며느리의 관계는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었기에 하나처럼 보이는 “이중 생물”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이나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이 두 ‘여인들’은 공히 인류 최초의 어머니인 ‘루시’처럼 멸종 직전의 “화석 인류”에 가깝다는 진실이다. 작가는 자본의 논리 속에서 쓸모없는 잉여적 존재로 취급받기 쉬운 여성들의 모성과 노동을 양가적인 침의 상징성으로 녹여냄으로써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이 소설 자체가 이윤과 효율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진화에 대한 맹목과 공생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처절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에 대한 리얼하고도 불편한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중앙일보 2013년 4월 29일자 - 동아일보 2013년 4월 27일자 - 한겨레 신문 2013년 4월 29일 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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