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의 황혼> 초판은 1934년 3월 런던의 빅터 골란츠 사에서 출간됐다. 같은 해 12월에 4쇄를 발간할 정도로 영국뿐 아니라 당시 유럽 독서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책. 이 책은 저자가 격동기 중국의 한복판에서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큼,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친다.
먼저 중국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명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자신의 제자였던 부의에 대한 솔직한 평가도 특기할 만하다. 궁정의 각 가지 모습과 광경, 다양한 행사에 대한 세부 묘사 등은 희귀한 자료이다. 책에 실린 40여 컷이 넘는 각종 문서 등도 귀한 자료다. 이 모든 사진과 문서는 저자가 직접 촬영했거나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이 책은 개인의 역사회고록이지만 사료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중국근대사의 1차 사료이며 당시 국제 정치에서 가장 민감했던 만주국이 수립되기 전의 배경과 상황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이 책은 우리가 이제까지 배웠던 중국 근대사와는 상당히 다르다. 가장 큰 관점의 차이는 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영국인인 저자인 존스턴은 기본적으로 (입헌)군주제 옹호자다. 그는 중국을 위해 군주제를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관점으로 인해 이 책은 기존의 중국 근대사 책과는 다른 서술을 보인다.
최근작 : … 총 6종 (모두보기) 소개 :1968년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번역기획공동체 ‘窓’의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 『삼국지강의』(공역), 『자금성의 황혼』, 『사기와 한서』, 『제자백가』가 있다.
1934년 3월 런던의 한 서점가
연두색 장정을 한 책 한 권이 서점마다 가득 쌓인 채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었다. 저마다 손에 책을 들고 계산대로 몰려가 값을 치르느라 난장판이었다. 책을 사는 사람들은 다양해 보였다. 깊은 교양을 갖춘 신사들도 있었지만 그저 이 책의 내용을 궁금해 하는 부인들이나 젊은 청년들도 많았다. 그 옆에서는 프록코트를 입은 한 무리의 신사들이 모여서 그 책을 놓고 국제 정세에 대해 심각하게 토론 중이었다. 당시 국제 정치의 ‘태풍의 눈’이었던 만주국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러 열강이 중국 정치에 관여하고 있던 만큼 중국의 향후 정세는 곧 세계의 정세에 밀접한 영향을 줄 것이었다. 이 베스트셀러의 제목은 ‘자금성의 황혼’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서양인에게 처음 알려주었던 황금의 땅, 신비의 나라 중국, 그 중심에 있는 금지된 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책이라고 했다. 지금은 이미 멸망해버린 나라의 황제에 관한 책이라고, 그 황제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와 암투가 담긴 책이라고도 했다. 헌데 그런 책을 중국인이 아닌 우리 대영제국에서 파견한 고위 관리가 썼다니? 게다가 그 신사는 황제를 직접 가르치기까지 했다고! 일반 영국인에게, 중국은 대영제국의 깃발 아래 납작 엎드린 덩치는 커도 희망 없는 나라일 뿐이었지만 황제라면 얘기가 조금 달랐다. 거대한 중국의 황제를 제자로 거둔 사나이의 책인 것이다. 궁금해서라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좌파 출판사에서 출간한 우파의 책
『자금성의 황혼』 초판은 1934년 3월 런던의 빅터 골란츠 사에서 출간됐다. 같은 해 12월에 4쇄를 발간할 정도로 영국뿐 아니라 당시 유럽 독서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비롯한 좌파 성향의 출판물로 유명한 이 출판사의 사장 빅터 골란츠가 군주제를 옹호하는 이 책을 출간한 것도 괴변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출간은 1, 2차 세계대전 사이인 1930년대 초 세계 정치 무대의 태풍의 눈이 된 만주국의 출현과 관련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 물론 중국 황제의 최초의 외국인 사부로서 만주 황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 영국인 ‘중국통’의 특이한 경험에 대해 유럽의 독자들의 궁금증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사람의 회고록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캠브리지 중국사의 참고문헌에도 수록될 정도로 만청민국사(晩淸民國史)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사료 가운데 하나다. 중국근대사의 1차 사료라는 점, 당시 국제 정치에서 가장 민감했던 만주국이 수립되기 전의 배경과 상황을 상세하게 다루었다는 점 등으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번역되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1946년 8월에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이 책을 증거 자료로 채택하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저자인 존스턴은, 내부도 외부도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 중국의 근대를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식민지 근대화를 지낸 우리에게는 결핍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왕조의 기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사실 전무하다시피하다. 친일과 민족주의로 점철된 시대를 겪는 와중에서 정작 기록으로 남겨야 할 내용은 남기지 못했다. 이 책은 그런 빈틈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어떤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해줄 것이다.
모택동은 왜 이 책을 즐겨 읽었을까?
중국에서는 모택동(毛澤東)이 이 책을 영어 공부 교재로 쓴 것으로 유명하다. 1963년 모택동의 개인 영어 교사가 된 장함지(章含之) 여사의 회고에 따르면, 모택동이 가장 좋아하던 영어 텍스트가 바로 이 책 『자금성의 황혼』이었다. 현대에서 또 하나의 제국을 일궈냈던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 모택동이 청나라 마지막 황실 몰락의 역사에서 무엇을 읽어냈을지 무척 궁금하다. ‘황제’인 그에게 ‘마지막 황제’와 마지막 왕조의 몰락에 대한 기록은 각별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모택동이 이 책에 빠졌던 이유는 단지 황제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책은 저자가 격동기 중국의 한복판에서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큼,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친다. 먼저 중국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명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큰 사건으로는 광서제(光緖帝)의 무술변법, 연합군의 북경 입성, 서태후의 재집권, 공화국 수립, 원세개(袁世凱)의 군주국 재건 시도, 장훈(張勳)의 복벽, 환관 추방, 풍옥상(馮玉祥)의 쿠데타와 부의의 출궁 등이 서술되어 있다. 작지만 흥미로운 사건으로는, 달라이 라마와 서태후의 만남, 시력이 나빠진 황제를 위해 안경을 끼게 한 이야기, 자동차를 구입하고 궁중에 전화를 설치하는 황제, 만주족의 상징인 변발을 황제 본인이 잘라버리는 장면, 자금성에 생긴 테니스코트의 유래, 이화원(?和園)의 곤명호에 몸을 던져 죽은 왕국유(王國維), 선통제와 인도 시인 타고르와의 만남, 명나라의 황손 이야기, 천진에서 강유위(康有爲)와 선통제가 만나는 장면, 건륭제와 서태후 황릉 도굴 사건 등이 있다.
학술과 대중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
이 책에는 수많은 중국인과 서양인이 등장한다. 중국인만 들어도 광서제, 서태후, 강유위, 원세개, 손문(孫文), 장훈, 장작림(張作霖), 장학량(張學良), 풍옥상, 단기서(段祺瑞), 정효서(鄭孝胥), 진보침(陳寶琛), 진독수(陳獨秀), 호적(胡適), 나진옥(羅振玉), 왕국유, 고홍명(辜鴻銘) 등 수십 명을 헤아린다. 저자 자신이 만났거나 알고 있던 당시 중국 저명인사들에 대한 거침없는 평가도 흥미롭다. 자신의 제자였던 부의에 대한 솔직한 평가도 특기할 만하다. 또한 자금성 궁전들과 이화원 경내를 서술한 부분, 황제의 만수성절을 치르던 궁정의 모습, 육경궁에서 이뤄지던 황제의 수업 광경, 황제의 결혼식 절차 및 행사에 대한 세부 묘사 등은 이 책이 아니면 읽을 수 없는 희귀한 자료이다. 책에 실린 40여 컷이 넘는 각종 문서 등도 귀한 자료다. 이 모든 사진과 문서는 저자가 직접 촬영했거나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건청궁의 옥좌에 앉아 있는 선통제의 모습, 황제 퇴위 후의 우대 조건에 관한 문서, 그 당시의 궁정신문(궁문초), 황제의 친필 영어 문건, 궁중 보물과 관련한 문서, 자금성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관람 초대장, 선통제와 인도 시인 타고르의 기념 촬영 사진, 벽돌담으로 내부를 쌓은 이화원 내의 광서제의 거처(옥란당), 마지막 황제가 저자에게 준 마지막 선물 사진 등이 그것이다.
위와 같이 이 책은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풍부하게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시대에 활약했던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성도 지녔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이어서 흥미로운 이야기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대중성도 가지고 있다.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된 중국 만청민국사의 걸작
이 책의 학술성과 대중성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이 책의 옮긴이는 다른 나라에서 출간되었던 원서 가운데 가능한 한 모든 원서를 구입해서 직접 대조하고, 원본 이후 수정된 내용까지 철저하게 확인하는 스칼라십을 보여주었다. 이 원서의 존재를 발견하고 나서 이 책의 다양한 판본을 수집하고 비교대조하는 데만도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번역에 들어간 다음에도 꼬박 1년여의 시간이 소비되었다.
또한 옮긴이가 부록에 수록한 자료는 이 책의 자료적 가치를 한결 더해준다. 본문에서 원 저자가 미처 수록하지 못했거나 번역을 누락한 한문 원문을 직접 찾고 해석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했다. 상세한 연표와 주요 인물을 소개하여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울러 당시의 북경 지도와 자금성도도 한국 독자들이 손쉽게 볼 수 있도록 손보았다.
역자가 이 책에 들인 수고는 「옮긴이의 말」을 보아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면 한국에서의 출간은 너무 뒤늦은 셈이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출간된 어떤 나라의 번역본보다도 높은 완성도를 갖춘 번역본이라는 점만은 감히 기록해두고자 한다. 역자는 이 책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잘 요약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저자가 문학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章을 구분했으면서도 사건의 줄거리를 따라 일관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외세와 중국, 광서제와 서태후, 원세개와 만주 궁정, 내무부와 황제, 제정파와 공화파, 전통과 현대 등 피아의 구별을 선명하게 함으로써 불행한 황제들에 대한 무한한 동정심, 부패 악에 대한 정의감, 유교적 전통에 대한 옹호, 만주 황실에 대한 기대 등 저자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독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또한 동서양 고전에 익숙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서양 당대의 정치학이나 역사를 말하다가 영시를 인용하거나 라틴어 경구를 가져오기도 한다. 한문 고전과 한시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궁중 용어와 당시의 중국어 표현을 유려하게 구사한다. 이렇듯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에 쓰인 글임에도 매우 생생하고 흥미롭게 읽힌다는 점이 이 책의 큰 특징일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시대에 대하여
이 책은 개인의 역사회고록이지만 사료의 성격도 가지고 있으므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시대와 그 구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아래와 같이 집필 범위를 설명한다.
“박명에는 저물녘의 황혼도 있지만 새벽녘의 여명도 있다. 이 책에서 말한 황혼을 집어삼킨 어둠도, 때가 되면 찬란한 태양이 내리쬐는 새날을 맞이할 여명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중국인을 상찬하고 존경하는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고 굳게 믿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에는 다른 이들에게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보이는 하늘 한 모퉁이에서 새로운 서광이 어슴푸레 비추기 시작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 책에서 말할 내용과 직결되는 것은 저물녘의 황혼일 뿐이며 새벽녘의 여명은 아니다. 따라서 나의 이야기는, 불행한 덕종 황제가 강유위가 올린 포괄적 개혁안을 실행했던, 숭고하지만 달성할 가망이 없는 시도를 한 1898년부터 1931년 말 중국 만주 왕조의 마지막 황제가 조상의 발상지로 돌아가 그 이듬해에 세계 정치 무대의 태풍의 눈이 된 만주국이 출현하기까지의 34년간으로 한정하려 한다.”
?인용문에서처럼 이 책은 중국 근대사 가운데 34년간의 일들을 다룬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 기간을 크게 셋으로 나누면, 암운이 드리워 어두워지고는 있었지만 아직 태양이 내리쬐던 시기(1898~1911), 자금성의 황혼기(1912~1924) 그리고 황혼 뒤에 찾아온 폭풍의 밤(1925~1931) 시기다.황혼기 이전은 강유위의 개혁안을 받아들인 광서제가 백일유신을 추진하던 때부터 서태후의 재집권과 신해혁명의 발발까지로 1장부터 6장에서 다룬다.황혼기는 공화국과 황실의 타협에 따라 부의(선통제)가 자금성의 일부 구역을 차지해 퇴위한 황제로서 여전히 궁정에서 거주하다가 1924년 11월 풍옥상에 의해 자금성에서 추방될 때까지로, 이 책의 핵심부다. 7장부터 23장까지 다룬다. 공화국이 수립된 그 나라의 수도에 공화국의 정무를 책임진 대총통과 혁명으로 붕괴된 군주국의 황제가 13년 동안이나 ‘적과의 불편한 동거’를 하는 상황이 묘사된다. 특히 황실과 공화파의 이 ‘이상한 타협’에 대해서는 7장에서 더 상세하게 다룬다.폭풍의 밤 시기는 자금성에서 쫓겨난 황제가, 갇혀 있던 ‘북부’를 탈출해 일본 공사관에 잠시 머물다 다시 천진의 일본 조계지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24장에서 에필로그까지다.
푸른 눈의 군주제 옹호자가 바라보는 격동의 중국근대사
그간 중국근대사의 연구는 일면으로 치우친 점이 없지 않았다. 대체로 말하면 청의 멸망-중화민국 수립-군벌의 난립-국공내전-공산정권의 수립으로 이어지는 진보주의(?)에 관점에 따른 발전 과정에 따라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긴 하지만 우리가 이제까지 배웠던 중국 근대사와는 상당히 다르다.
가장 큰 관점의 차이는 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영국인인 저자인 존스턴은 기본적으로 (입헌)군주제 옹호자다. 중국 전통문화의 애호자이자 고전에는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던 저자는 중국을 위해 군주제를 가장 바람직한 정치 형태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당시 진독수 같은 공산주의자나 장훈 등 군권을 지난 군벌, 중국 민심 동향을 파악하고 있던 외국의 각종 언론매체들을 통한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그 자료들에 근거하면 군주제가 성실하게 이행되었다면 중국이 상당 부분 혼란을 줄이고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겠지만, 군주제(봉건 군주제가 아닌 영국식의 입헌 군주제)가 중국에서 유지되었다면 청 멸망 후 이어진 외세의 침략 강화, 군벌의 난립, 개혁파와 보수파의 대립, 국공내전 등과 같은 극한적인 혼란이 빚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가능하게 할 만큼 기존의 중국 근대사 책과는 서술 관점이 현격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가 더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