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1억원 고료 제1회 '국민일보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형경씨가 자신의 파란많은 체험을 바탕으로, '그 여자' 김형경을 키운 10할의 세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10할의 세월은 화자(話者)인 '그 여자'가 '그 아이'에서 '그 여학생'을 거쳐 '그 여자'가 되기까지, '그 여자'를 탁마시킨 도저한 상실의 세월을 일컫는다. '그 여자'는 작가가 작가와 작품 사이의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한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장편인 <세월>은 작가가 30여년 동안 안으로만 삭이고 있던 '봉인된 시간'의 안쪽을 송두리째 뒤집어 보인 것. '그 여자'의 어머니 이야기와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 '유난스러웠던 가족사며 성장기', 지금도 '그 여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성폭행을 낱낱이 털어놓고 있다.
이 소설은 외형상, 화자인 '그 여자'가 산 위로 올라갔다가 지난날을 회상하고, 하산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 산은, 한 계집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어금니를 물면서 상실감을 참고, 입술을 깨물며, 모든 회한과 굴욕'을 참으며, 그렇게 넘어온 고난의 산이다.
작가는 이같은 이야기를 하나의 물방울이 상류에서 하류로 나아가 마침내 드넓은 바다와 만나는 상황 속에 밀도있게 배치시킨다.
'마흔 살이 넘기 전에는 자기 이야기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말이 이마에 박혀 있었다고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틀림없이 이 소설을 썼을 것 같다. 그것이 내게는 삶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지점을 넘어서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아무 저항감이나 저어함 없이,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소설을 쓰리라 꿈꾸기도 했다. 이 소설은 그 작업의 첫 발자국이 되어 주었다는 점에서 내게 소중하다. 소설에 묻어 있는 그 시기다운 미숙함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