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의(醫) 현실을 다각적으로 진단한 책으로 서양의학의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우리나라 의료 정책과 제도, 전통 의학과 서양 의학의 접목 등을 논한다.
저자는 우선 역사적으로 전통 의학이 존재해 온 우리 사회에서 서양 의학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는다. 근대 이후 서양 의학은 '인체는 기계이고 질병은 이 기계가 고장난 결과이며 의사의 역할은 인체라는 기계를 수리하는 것'이라는 생의학적 패러다임을 토대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은 보건의료의 상품화, 자본주의적 가치의 세계화라는 부정적 모습으로 나타났고 저자는 이에 대해 생태학적 대안 패러다임을 찾을 것을 주장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서양 의학과 한의학 사이의 학문적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단순히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지식으로 의(醫)를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의학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또한 개화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보건 의료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앞으로의 지향점을 논한다.
이 책의 마지막글 '건강을 위한 의료'에서 저자는 앞서 논의한 주제들을 전제로 바람직한 의료 정책에 대한 자신의 전망을 보여준다. 저자는 "정책과 제도는 의(醫)의 사회적 존재 방식을 결정한다"고 말하며 의료보험 통합 논쟁의 허와 실을 진단하고 우리나라 의료 정책의 방향을 외국 사례와 함께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20세기 한국 의학의 비극은 의자(醫者)들이 몸의 주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양 의학에 의해 사회화된 의자들은 임상 의학을 신봉하던 않던 간에 신체와 정신의 이분법 속에 같혀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 의학을 따르는 의자(醫者)들은 한의사 면허증이 있고 없고 간에 몸의 권력(bio-power)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자는 의학 지식에 의하여 몸에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한국인의 몸이 서구의 의학 지식에 의해 타자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한(漢)의학을 한(韓)의학으로 개명하였지만, 의술이 몸에 작용하여 주체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 볼 때 20세기 한국 역사는 몸이 의(醫)로부터 점점 더 철저히 소외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