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로점] 서가 단면도
|
재벌들은 청문회에 나와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해도 ‘빨리 보내 드리자’라는 배려를 받지만, 눈물 나도록 약자였던 이 책의 주인공들은 죄가 없었음에도 살인범으로 몰려 긴 시간 동안 감옥에 있었다.
김신혜 15년째, 최성필 10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도합 14년. 얼마 전 <다음> 스토리펀딩 역대 최고의 후원액과 후원자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고, 최근 잇달아 두 건의 재심 사건에서 승소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파산 변호사 박준영과 백수 기자 박상규의 이야기를 묶었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 가까이 되건만,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을 공권력과 법이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를, 이 책은 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웃다가 눈물이 나고, 분노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1장. 이탈한 자의 자유 13
: 박상규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사표를 냈을 때, 사장인 내 가슴은 설레었다. 저 ‘또라이’가 앞으로 무슨 사고를 칠지 기대가 컸다. 15년 전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제자로 박상규를 처음 만났다. <오마이뉴스>에서는 10년을 함께 보냈다. 그를 두 단어로 정리하면 ‘똘기’와 ‘재미’다.
박상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퇴사하면서 ‘사대문 밖으로 나가 살아 있는 기사를 쓰겠다.’고 하더니 정말 자신과 닮은 ‘또라이 변호사’를 만나 큰 사고를 쳤다. 이 책 『지연된 정의』는 백수 기자 박상규와 파산 변호사 박준영의 환상적 결합을 보여 준다. 두 사람이 ‘삼례 3인조 사건’, ‘익산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재심과 무죄를 이끌어 내는 과정은 영화처럼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죽은 정의는 이렇게 살아날 수도 있구나! 기자는 ‘기레기’라 불리고, 법률가는 부자만을 위해 일한다고 여겨지는 시대. 두 사람의 활동은 작은 희망의 증거다. 두 ‘또라이’가 계속 사고를 칠 수 있도록, 많은 독자들이 『지연된 정의』를 응원해 주면 좋겠다. : 우리 사법 시스템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사법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오만하고, 기계적이며, 무능하다. 약자에겐 추상같고, 강자 앞에선 봄눈 같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시스템이 제법 갖춰졌다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에는 ‘무죄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라는 비영리단체가 그 결함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92년부터 잘못된 수사와 판결에 희생된 3백여 명의 누명을 벗겼고, 2백 명 가까운 진범을 밝혀냈다고 한다. 나는 KBS 탐사보도팀 시절부터 한국판 ‘무죄 프로젝트’를 구상해 봤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그러던 중 삼례 3인조 사건을 접했다. 확정판결이 난 형사사건에서 재심을 이끌고, 무죄까지 받는 건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누가 이런 일을 했을까? 이후 박상규와 박준영 콤비를 유심히 살폈다. 삼례 3인조에 이어 익산 택시 기사 살인 사건과 무기수 김신혜 사건에서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기성 매체나 법조계가 그저 귀찮아서, 아니면 돈이 안 돼서 지나쳤던 일을 이들이 뒤바꿨다. 단순히 재심과 무죄를 이끌어 냈다는 차원을 넘어, 이제 이들의 존재는 한국의 사법 시스템에 켜진 경고등이 됐다. 두 사람의 책 『지연된 정의』는 경쾌한 ‘버디 무비’와 존 그리샴의 법정 스릴러,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동시에 보는 느낌이다. 자칭 백수 기자와 파산 변호사가 의기투합하면서 나눈 말. “변호사나 기자나, 그냥 보면 안 보이는 걸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줘야 해요.” 『지연된 정의』는 근래 최고의 논픽션이자, 진짜 기자와 진짜 변호사의 얘기다. : 이 책에는 장애를 가진 부모 밑에서 지적장애인으로 태어나 억울하게 강도 살인범으로 몰린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범이 잡혔지만, 애초에 그를 기소한 검사는 실수를 감추려고 진범 앞에서 ‘가짜 범인’을 윽박질러 다시 교도소로 보낸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진범은 검사 앞에서 펑펑 운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 장면을 이렇게 회상한다. “세상에서…… 나를 위해…… 울어 준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어요. 그 진범…….”
우리 시대 법이 약자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책. 잦은 한숨과 눈물 없이 읽기 힘들다. 가망 없는 재심 사건들을 맡아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을 위해 뛰어 온 박준영 변호사의 활동을 박상규 기자가 생생하게 정리했다. 법과 정의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