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늙음 사이,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닌 중년 여성의 면면을 당사자의 이야기로 들을 수 있는 책이다.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았던 그녀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고, 그런 삶 속에서도 조화와 균형을 찾아낸 중년 여성들의 지혜로운 선택을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에세이이다.
마흔이란 숫자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혼자 인도를 떠돌며 통과의례 겪듯 힘겹게 사십 고개를 넘었더니, 오십까지 이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남편과 아이들 건사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날들을 뒤로 하고 육십이 가까워지니, 지금껏 지나온 세대 누구도 살아본 적 없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중년의 시간을 보내는 또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댄스 파트너 남자에 대해 통화하는 여성, 한 달에 한 번 있는 친구들 모임에 외손주 데리고 나왔다가 구박을 받는 친구, 모임 날짜를 착각해 엉뚱한 날에 외출하는 지인, 치매 유치원에 다니는 시어머니를 딸처럼 부양하는 아파트 이웃, 온 동네 사랑방 과일 가게 옥자 씨…
중년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누구랄 것 없이 열심히 살았고, 지금 또한 그렇게 살고 있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들이 없다. 따뜻한 애정으로 그네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시선 덕에 읽는 이도 자연스럽게 그 삶에 녹아들게 되는 신기한 에세이다.
최근작 :<엄마가 아들에게 전하는 그림 편지> ,<아이들의 평화는 왜 오지 않을까?> ,<퇴근길 인문학 수업 : 멈춤> … 총 14종 (모두보기) 소개 :숙명여자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부모와 청소년을 위한 영화인문학, 자녀교육과 소통을 주제로 한 강연 활동과 집필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두 아이를 독서와 영화, 여행을 통해 키웠다. 그 덕에 길 찾기가 쉬웠다는 아이들의 말에 흐뭇해한다. 아이들이 동네 구석구석, 지구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
《아기구름 하양이》, 《참나무 숲이 된 교실》, 《이상한 나라》 등 동화책 몇 권과 《청소년을 위한 추천 영화 77편 1, 2》, 《엄마의 영화관》, 《오늘도 엄마인 내가 낯설지만》, 《이런 중년이어도 괜찮습니까?》, 《퇴근길 인문학 수업》, 《아이들의 평화는 왜 오지 않을까?》 등을 썼다.
|쉽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고, 묵직하면서 투명한 에세이|
마흔이란 숫자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혼자 인도를 떠돌며 통과의례 겪듯 힘겹게 사십 고개를 넘었더니, 오십까지 이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남편과 아이들 건사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날들을 뒤로 하고 육십이 가까워지니, 지금껏 지나온 세대 누구도 살아본 적 없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중년의 시간을 보내는 또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댄스 파트너 남자에 대해 통화하는 여성, 한 달에 한 번 있는 친구들 모임에 외손주 데리고 나왔다가 구박을 받는 친구, 모임 날짜를 착각해 엉뚱한 날에 외출하는 지인, 치매 유치원에 다니는 시어머니를 딸처럼 부양하는 아파트 이웃, 온 동네 사랑방 과일 가게 옥자 씨… 중년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누구랄 것 없이 열심히 살았고, 지금 또한 그렇게 살고 있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들이 없다. 따뜻한 애정으로 그네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시선 덕에 읽는 이도 자연스럽게 그 삶에 녹아들게 되는 신기한 에세이다.
|자연스럽게 늙어 가는 멋진 중년들의 시시콜콜한 삶 |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 이명랑의 『행복한 과일 가게』 이후로 오랫동안, 위트 넘지는 문체로 이웃들의 이야기를 살갑게 들려주는 에세이를 만나기 힘들었다. 그것도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스스로 말하는 에세이는 더욱 귀했다. 젠 체하지 않고 솔직하게, 무게 잡지 않고 구체적으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간 글들 곳곳에 피식피식 저절로 웃음이 배어나 곤란할 지경이다.
책을 읽다 보면 외출할 때마다 고무줄이 쫀쫀한 팬티를 일부러 찾아 입는 까닭이 뭔지, 선반 뒤쪽으로 넘어간 ‘거시기’ 때문에 오가는 손님들에게 민망한 질문을 해야 하는 옥자 씨의 사연은 또 뭔지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수면제 사 모아 봤자 쉽게 죽지도 못하니까 그런 생각일랑 얼른 버리라는 약사 딸과 벌이는 실랑이에 대해, 반려견 챙기느라 엄마는 뒷전인 자식에게 서운한 마음은 어쩌면 좋을지, 리모컨 하나 들고 서로 좋아하는 드라마 보겠다고 옥신각신하는 중년 부부의 아슬아슬한 싸움 구경도 재미지다. 금요일마다 상갓집 가는 남편은 부인이 부담스러워 그렇다는 상식까지 배우게 되는 책이며, 퇴직한 남편이 요리를 배우고, 주말마다 아내의 주방은 폐업 선언을 한다는 노하우에 이르러선 무릎을 치기도 한다. 시시콜콜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런가, 다음 장을 넘기는 마음이 자꾸만 바빠진다.
|살아온 대로 살아간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삶의 한순간에 돋보기를 갖다 대고 보니, 참으로 따뜻하다. 과일 가게 한켠에 채소 장사 하라고 자리를 내주는 것도 모자라 그날 못 판 과일을 잔뜩 싸 주는 마음이 그렇고, 약국만 열면 한 달에 몇 천만 원도 거뜬한 능력자인데 세계를 떠돌며 가난하고 낮은 이들을 돌보는 일에 평생을 바친 어느 약사의 삶이 그렇다. 새엄마라고 의붓딸 차별한다 소리 들을까 봐 평생을 조심조심 살아온 어느 엄마의 피아노 소리는 마음에 사무치고, 생활비를 몽땅 천 원짜리로 바꿔 이천 원씩 삼십 개를 노랑 고무줄로 묶어 하루 이천 원으로 살아 낸 선영 엄마의 이야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이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작은 거라도 나누고 살고자 애썼던 여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삶의 속살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런 마음들이 키운 아이들이라 자식들의 이야기도 어여쁘다. 자기 잘못도 아닌 일 때문에 군인으로서의 미래를 접어야 했던 미용실 아들 건명이가 푸드 트럭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서는 덩달아 신명이 난다. 자신을 방목해 키워 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강안 작가 아들의 진심도 기껍다. 당신 대에서 제사를 다 정리하고 가시겠다 결심한 시어머니의 이야기에선 세대 갈등을 넘으려는 지혜로운 여성들의 선택이 보인다.
각자 살아온 기준대로 오늘을 갈무리하고, 내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귀한 이야기다. 그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들이 참 곱디곱다. 내 앞에 앉은 이가 조곤조곤 이야기 들려주듯이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누가 누굴 길들인다는 말, 얼마나 누추한가.”
“중년의 강을 건너는데 늘 맑은 날일 수는 없을 것이다. 비와 바람, 때론 눈폭풍이 몰아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나이 한 살 더할 때마다 측은지심이 더해 간다. 참 다행이다.”
“마음의 온도는 어떤 말을 듣느냐에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에만 집중해 상대방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내뱉는 말이 오갈 때, 어쩌면 우리는 평생 후회하고 살지도 모른다.”
“때가 되면 아이의 손을 놓아야 한다. 그게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진짜 사랑이다.”
“내 마음에 분심이 생길 때마다 친구가 준 자수 들꽃을 본다.
내 마음도 그렇게 잘 익어 가기를 바라면서.”
“닮아 간다. 할매의 며느리가. 할매도 할매 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배웠을까?
할매처럼, 할매의 며느리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프다.
종종 외출하는 옆집 젊은 새댁의 아이도 맡아 주고, 봄이면 쑥과 나물을 가득 담은 바구니에 진달래꽃 한 가지를 얹어 건네주는,
폭 익은 고구마처럼, 달고 따끈한 할매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