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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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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눈이 나쁜 달팽이 콜랭은 나뭇잎 위를 느릿느릿 기어가다가 천적인 개구리와 마주친다. 옆에서 지켜보던 도마뱀 아나톨이 '조심하라'고 소리치는데도, 콜랭은 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탓에 그저 꾸물거리기만 할 뿐이다.
풀쩍, 개구리가 콜랭을 덮친다. 그리고 이 순간, 작품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다. 개구리가 달려드는 통에 공중으로 날아가버린 콜랭은 놀랍게도 그림책의 책장을 찢고 튀어나와 작품을 그리고 있던 작가의 안경 앞으로 떨어진다. 안경을 통해 보이는 환한 세상 앞에 콜랭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태어나서 난생 처음 시야가 트이는 경험을 한창 즐기고 있을 때 작가의 손이 불쑥 나타나 안경을 집어가 버리고, 이후 콜랭과 아나톨은 안경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페이지에서 페이지를 통과하고, 찐득한 물감이 뒤죽박죽 섞인 밑그림 속을 헤쳐나가는 기이한 여행. 이처럼 이 그림책은 작품 안과 작품 밖, 즉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충분히 실험적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난해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게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도입하여 어린이들에게 지적 작그을 주고 상상력의 확장을 경험하게 해 주는 책들이 특히 유럽에서 많이 출간되고 있다. 독창적, 실험적이고 유머러스한 내용과 편집 디자인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고전 그림책이 주지 못하는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 준다.
눈이 나쁜 달팽이가 안경을 찾으러 떠난다는 유머러스한 발상, 각 상황에 따라 다채롭게 사용된 타이포를 통한 음성의 성공적인 시각화, 예측하기 힘든 기발한 결말은 미디어 시대에 시도될 수 있는 새로운
그림책의 모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