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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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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이후 4년 만에 새 역사 소설로 돌아온 김훈. 김훈 작가는 집을 떠나 2011년 4월 경기 안산시 선감도에 들어갔고, 칩거 5개월 만에 원고지 1,135매 분량으로 탈고했다. 이제까지 펴낸 소설 중 가장 긴 분량이다. 연필로 한 자 한 자 밀어내며 쓴 지난한 과정 가운데 틈틈이 흑산도, 경기 화성시 남양 성모성지, 충북 제천시 배론 성지 등을 답사했다.
<흑산>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전통과 충돌한 정약전, 황사영 등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을 다룬다. 당시 부패한 관료들의 학정과 성리학적 신분 질서의 부당함에 눈떠가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해도 진인'이 도래하여 새 세상을 연다는 '정감록' 사상이 유포되고 있었다. 서양 문물과 함께 유입된 천주교는 이러한 조선 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지식인들의 새로운 대안이었던 셈이다. 작가 김훈은 천주교에 연루된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의 삶과 죽음에 방점을 찍고 <흑산>을 전개한다. 정약전은 한때 세상 너머를 엿보았으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배반의 삶을 살았다. 그는 유배지 흑산 바다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실증적인 어류생태학 서적 <자산어보>를 썼다. 황사영은 세상 너머의 구원을 위해 온몸으로 기존 사회의 질서와 이념에 맞섰다. 조정의 체포망을 피해 숨은 제천 배론 산골에서 그는 '황사영 백서'로 알려진, 북경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썼다. 비단 폭에 일만 삼천삼백여 글자로 이루어진 이 글에서 황사영은 박해의 참상을 고발하고 낡은 조선을 쓰러뜨릴 새로운 천주의 세상을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1801년 11월 배론 토굴에서 사로잡힌 그는 '대역부도'의 죄명으로 능지처참된다.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뱃길에서 시작해서 절해고도 흑산에서 정약전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가르칠 서당을 세우고 새로 부임하는 수군 별장을 맞는 장면으로 끝난다. : 『흑산』은 우리의 기대를 두 번 배반하는 소설이다. 좀 더 유명한 정약용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그의 형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과, 주인공인 정약전조차도 비중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정약전이 사학죄인(邪學罪人) 즉 천주교도였기에 흑산으로 유배를 가서 『자산어보』를 쓰기까지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지만, 이 소설은 종교인 이야기도 아니고, 유학자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연약하고 누추한, 정약전 주변 인물들 모두의 삶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의 말처럼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국가나 종교, 가족을 떠나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일이 가장 단순한 일인데, 가장 단순해서 무섭고, 무서워서 어려운 일이라는 전언이 수식 없고 물기 없는 김훈표 문체로 서술되고 있다. 그나마 이 소설에서 가장 따뜻한 말은 정약전이 왜 자신의 책 제목을 ‘흑산어보(黑山魚譜)’가 아닌 ‘자산어보(玆山魚譜)’라고 했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338쪽) 그래도 소설 제목은 다시, 『흑산』이다. 역시 김훈답다. 정약전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자산어보』(1815)를 완성한 후 흑산에서 1년 후에 죽었다. :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버리지 않았기에 큰 산이 되었고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1년 10월 29일 '이달의 책'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1년 12월 17일자 - 동아일보 2011년 12월 24일 '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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