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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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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소설집. 숫자로 치자면 네번째 소설집이고, 작가의 입을 빌리자면 첫번째 연애소설집이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그만의 장기인 빠른 읽힘의 힘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일부러 쉬어가라는 듯 찍어둔 쉼표 사이사이 그만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은 여전히 젊다. 특유의 재치도 양껏 잘 녹여냈다.
그러나 뭐랄까, 앞선 소설들과 다르다면 다를 묘한 지점 하나가 또 눈에 들어온다. 멀겋고 말갛고 깊고 푸른 '슬픔'의 물구덩이들이 소설 여기저기에 무심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기 물구덩이가 보인다. 김중혁이 놓았으니 물구덩이는 아닐 거야, 징검다리겠지, 하고 씩씩하게 밟았는데 힘껏 밟은 그 발끝에서 일대 파란이 인다. 물구덩이에서 튀는 물이 얼굴과 옷만 적시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그 척척함을 남긴다. 실로 어쩔 수 없는 인간사라는 관계의 헛함이 알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 남과 여라는 관계에 있어 왠지 쿨할 것만 같은 작가 김중혁에게도 '사랑'이란 매번 '첫사랑'이겠구나 싶은 구절은 묘하게 또 반갑게 읽히기도 한다. 그가 굳이 숨기려고 애쓴 적도 없지만 또한 애써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던 남녀 사이의 내밀한 틈 같은 것, 이를테면 그 관계의 자잘한 균열에서 지진까지의 진폭 같은 것, 그 사랑이라는 관계의 문제를 시간의 문제와 더불어 전면에 드러내는 시도를 해봤다는 게 그의 의도이지 않았을까. 상황과 비율_007 : 이 작품은 시계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애틋한 연가(戀歌)이자 영원에 대한 꿈의 서사라 할 수 있겠다. 존재감의 박탈과 죄책감으로 인해 일찌감치 타인과의 관계맺기를 포기하고 시계라는 무기물의 세계로 침잠한 주인공은 오랜 세월을 시계 제작에 바치면서, 흐르는 시간의 의미를 터득하고 고독하고 삭막한 삶이지만 인생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는 인식을 얻는다. 이 소설은 김중혁 소설의 특장이라 할 수 있는, 결코 억압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특유의 경쾌함과 서술력으로 강하게 독자를 끌어들인다. 번잡한 수식도 장식도 쳐내버리고 전략적인 평이함을 택한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사유와 페이소스는 일정한 격조를 지키며 깊고 짙은 여운을 남긴다.
- 제13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요요」 심사평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한겨레 신문 2015년 8월 6일자 '잠깐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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