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현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 시집을 온전히 향유하는 방법은 시집을 그냥 읽는 것이다. 시집은 소설책처럼 요약될 수도 없고, 실용서처럼 활용할 수도 없다. 그러니 시집에 대한 서평 또한 시들을 직접 많이 소개하는 것이 온당할 수 있다. 더구나 시집의 제목이 <희망이 외롭다>라면, 그리고 “모든 시의 제목은 이런 것이 아닐까?/나는 이렇게 위독하다……는”이라고 말하는 김승희 시인의 감각에서라면 시어 이외의 말들을 최소화 하는 것이 최고의 응급처방이 될 것이다. “수도꼭지를 들고 다닌다고 물이 나오는 게 아니듯 희망을 희망하는 게 너무 외로웠다.”(시인의 말) 왜 이토록 희망이 외로운가. “오늘 여기에서 하루하루는 유격전이다,/유격대는 아니지만 늘 유격의 마음이 있다,/서울은 날이면 날마다 유격전이다.” “서울이여, 서울에서,/희망도 스펙이라고 쓴다, 지우고/희망은 오늘/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외설이 되었다고 쓴다.” “외설에 가까운 희망이여,/너무 고독해서 고독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구나.” 그래서 “우울을 버리려다 더 우울만 창창하다.” “문이 불현 듯 벽이 된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래도’나 ‘아직’, ‘아랑곳없이’라는 희망의 부사어들이 살아있다. “그래도라는 섬에서/그래도 부둥켜안고/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벌써라는 말에 비교해보면/아직이라는 말 너무 좋아,/아직 살아있구나……벅차게 손목을 잡아보는…….” “위독의 문학도 그런 최후의 경지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아랑곳없이……/폐결핵 3기에서도/심장에서 더운 김이 펄펄 나고/구름도 얼어붙은 차디찬 푸른 하늘에 링거 병을 매달고/아랑곳없이……/더할 나위 없이 좋은 최후의 그런 말…….”그러니 외로워도 다시, 희망이다. “간신히, 희망! 정말 희망은 우리에게 마지막 여권. 뿌리칠 수 없는 종신형인가보다.”(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