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준호, 라는 이름의 카피라이터가 있다. 1983년 오리콤을 시작으로 거손, 동방기획, 코래드, LGAD, O&M 등 여러 광고회사를 두루 거치며 뉴욕광고제, 한국방송광고대상, 중앙광고대상 등 국내외의 많은 광고상을 두루 휩쓸었다. 카피라이터 윤준호는 '윤제림'이란 이름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력 25년의 중견 시인이다.
이렇듯 그 파급력에 있어 가장 빠르다 싶을 속도전을 자랑으로 아는 광고와 가장 느리다 싶을 굼뜸을 자존심으로 아는 시, 이 두 장르를 암수한몸처럼 운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이가 바로 윤준호이자 윤제림이다. 또한 대학에서 카피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여러 학교 및 기관에서 광고 관련 강의를 계속 해오다 지난 2003년부터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 그의 삼십 년 이력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책 한 권을 펴냈다.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책 제목 아래 '카피, 시, 혹은 아이디어를 위한 메타포 50'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메타포의 힘으로 카피에 대한 사유를 50개나 적어나갔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카피'와 '아이디어', 이 두 단어가 같은 말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카피'가 단순한 글쓰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든 방법과 도구를 두루 활용하는 일이라는 데까지 그 초점을 맞췄다.
최근작 :<고물과 보물> ,<영원한 귓속말> ,<새의 얼굴> … 총 17종 (모두보기) 소개 :카피라이터, 서울예술대학 교수. 충북 제천에서 나고 인천에서 자랐다. 동국대 국문과에서 말과 글을 배웠으며 같은 학교 언론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했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오리콤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고, 그뒤로는 거손, 동방기획, 코래드, LGAD, O&M 등 여러 광고회사에서 객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하며 독립 카피라이터로 활동했다. 뉴욕광고제에서 은상, 한국방송광고대상과 중앙광고대상에서 카피 부문 개인상을 받는 등 국내외의 많은 광고상을 수상하였다. 서울시립대, 동국대, 서울예술대학 등 여러 대학과 한국방송광고공사 광고교육원, 국립국어원 국어학교 등에 출강하다가 2003년부터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젊음은 아이디어 택시다』『카피는 거시기다』 등의 저서가 있다. ‘윤제림’이란 이름으로 시도 쓴다. 1987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고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지훈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미미의 집』 『황천반점』『삼천리호 자전거』 『사랑을 놓치다』 『그는 걸어서 온다』 『새의 얼굴』 등이 있다.
윤준호 (지은이)의 말
이 책은 광고에 대한 바람직한 이해와 카피 혹은 아이디어에 관한 자각에 이르는 길들에 독자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시험적 담론들입니다. 카피의 착상과 표현의 다양한 방법론들을 두루 짚어가며 광고라는 건축에 동원되는 갖가지 자재의 기능적 책임과 심미적 풍경에 빠져서 많은 시간을 몽환적으로 소비한 카피라이터의 비망록입니다.
딴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광고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쪼록 올바른 개념으로 일을 배워서 엉뚱한 길을 헤매지 않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카피나 아이디어에 관한 오해가 굳어진 후배들이 엇나간 생각을 바로잡는 데 다소간의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설명하고 해석하고 나열하고 요약하는 방식의 교과서적인 글쓰기에는 아예 흥미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제 경험과 믿음의 창고를 뒤져서 다른 이들에게 진정으로 권할 만한 단서들을 찾아내려 하였습니다. 제 개인적 주장보다는 이 시대의 광고인들이 여전히 믿고 따르는 위대한 스승들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려 했습니다. 그분들의 생각이 어째서 진리에 가까울 만큼 빛나는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가며 제 얕은 생각의 바닥을 높여보려 했습니다.
『카피는 거시기다』
카피, 시, 혹은 아이디어를 위한 메타포 50
카피라이터 윤준호=시인 윤제림
윤준호, 라는 이름의 카피라이터가 있습니다. 1983년 오리콤을 시작으로 거손, 동방기획, 코래드, LGAD, O&M 등 여러 광고회사를 두루 거치며 ‘뉴욕광고제’ ‘한국방송광고대상’ ‘중앙광고대상’ 등 국내외의 많은 광고상을 두루 휩쓸기도 했으니 한국 광고 카피계의 족보를 한 번 꿰어보건대 그 역사의 아버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큰삼촌쯤은 되는 이가 아닐까 합니다. 아참, 최근에 그의 이름이 유명해진 연유가 또 이렇게 비롯된 적 있지요. SK 기업 광고 ‘어머니’편에 그의 글귀가 세세히 전해졌던 겁니다. 시작이 이러하지요. “재춘이 엄마가 이 바닷가에 조개구이집을 낼 때/ 생각이 모자라서, 그보다 멋진 이름이 없어서/ 그냥 ‘재춘이네’라는 간판을 단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 “자식의 이름으로 산다는 게 엄마의 행복인 거다”는 앞선 구절에 이해를 돕고자 풀이로 덧대진바,
네, 맞습니다. 카피라이터 윤준호는 ‘윤제림’이란 이름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기도 하지요.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시로 데뷔함과 동시에『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시로 등단한, 시력 25년의 중견 시인이라지요. 그리고 앞서 광고를 통해 유명해진 글귀는 바로 「재춘이 엄마」라는 그의 시 구절에서 따온 거라지요. 광고가 방송된 이후 전국에서 ‘재춘이네 조개구이집’이 어디에 있냐는 전화가 빗발쳤다지요. 심지어 전국 곳곳에 ‘재춘이네 조개구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들이 속속 생겨났다지요.
이렇듯 그 파급력에 있어 가장 빠르다 싶을 속도전을 자랑으로 아는 광고와 가장 느리다 싶을 굼뜸을 자존심으로 아는 시, 이 두 장르를 암수한몸처럼 운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이가 바로 윤준호이자 윤제림입니다. 그는 또한 대학에서 카피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합니다. 여러 학교 및 기관에서 광고 관련 강의를 계속 해오다 지난 2003년부터 서울예술대학 광고창작과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지요. 이런 살아옴의 배경 속에 시인이면서 카피라이터이면서 카피 선생인 이 재주꾼 글쟁이에게 호기심을 품게 되는 건 당연지사가 아닐까 하는데요,
그런 그의 삼십 년 이력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책 한 권을 펴냅니다.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천재소리 듣던 형의 책상이 내게 대물림된 듯 설레고 든든하고 우쭐해지는 심정인 건 그가 단순히 어떤 비법에 기인한 ‘기술’의 전수자가 아니라 ‘정신’의 순례자임을 아는 까닭입니다. 일찌감치 그는 이 책을 “‘가장 빠르고 정확한 아이디어로서의 카피’에 이르는 여러 가지 경로를 두루 체험할 수 있는 ‘생각의 트래킹 코스’라” 겸손하게 말하지 않았던가요.
결론은 한 줄! 카피라이터에게는 목숨 줄!
읽으면 득이 되는 ‘거시기’, 카피는 그런 ‘물건’이다!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책 제목 아래 ‘카피, 시, 혹은 아이디어를 위한 메타포 50’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자, 힌트를 얻으셨는지요. 메타포의 힘으로 카피에 대한 사유를 50개나 적어나갔다는 얘기입니다. “‘비유’는 세상 모든 말씀의 영약입니다. 온갖 메시지의 생약을 복합처방한 당의정입니다. (……) 수많은 종교경전이 그것으로 그득 차 있는 이유를 새삼스레 물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 비유를 통해 학습의 길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회와 방황의 시간적 낭비를 최소화시키며 현학과 맞서는 고통 없이 ‘자각’에 이르게” 하겠다는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은 ‘카피’와 ‘아이디어’, 이 두 단어가 같은 말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카피’가 단순한 글쓰기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든 방법과 도구를 두루 활용하는 일이라는 데까지 그 초점을 맞췄습니다. 자자, 비교적 길게 그 의도성을 드러낸다면 이런 전제가 깔려야겠지만요, 다분히도 단순히도 이렇게도 이 책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카피든 그것이 시든 어떤 식으로든 글을 써야 할 때, 그리하여 쓴다라 할 때 적절한 힌트와 조언이 되어주는 사유의 숲.
숲으로 나 있는 길은 모두 50개, 코스마다 50개의 걷기법이 표기되어 있지요. 카피는 제록스다, 카피는 걸어다닌다, 카피는 러브레터다, 카피는 떡이다, 카피는 속담이다, 카피는 비나리다, 카피는 야구공이다, 카피는 요리다, 카피는 제목이다…… 카피에 대한 50개의 비유가 유연하게 펼쳐져 있는 가운데 ‘카피는 거시기다’라는 봉우리 앞에서 몸이 섭니다. ‘거시기’처럼 우리만 알고 우리 아닌 사람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런 단어가 어디 그리 흔할까요. 그나저나 저자는 왜 카피를 일컬어 바로 그 ‘거시기’라 했던 걸까요.
거시기는 참으로 신묘한 말입니다. 홍길동 같은 말입니다. 대명사인가 하면 명사입니다. 명사인가 하면 동사입니다. 동사인가 하면 부사나 형용사입니다. 못 하는 역할이 없습니다. 거시기는 세상 모든 언어를 ‘종합 대행’하는 말입니다. 그 말이 지닌 가장 큰 힘은 흡인력이지요. 주목시키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거시기란 포장 속에 담긴 내용을 뜯어 읽자면 한눈을 팔거나 딴청을 피우기 어렵지요. 거시기는 그렇게 듣는 사람을 이야기의 프레임 안쪽 깊숙이 끌어들입니다. 말하자면 소비자 스스로 광고 속으로 걸어들어오게 만듭니다. 그렇게 소비자가 카피라이터의 책상 앞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어휘가 있다면 그것 참 백만 달러짜리 카피 아닐까요. ‘말이 곧 시’가 되었던 사람 미당 서정주가 이야기하는 ‘거시키’처럼.
-「카피는 거시기다」 중에서
세상 모든 어휘를 ‘종합대행’하는 참으로 신묘한 말씀의 사리, ‘거시기’. ‘거시기’는 대저 생각이 모자란 자가 생각을 채우기 위해 벌려놓는 일종의 틈처럼 허술하고 촌스러운 말같이도 보이지만 그것이 집중도를 유지시키기 위한 거시기의 치밀한 전략이란 걸…… 눈치들 채셨는지요. 그런 맥락 하에 카피가 거시기라는 존재의 자연발생적인 힘을 닮길 바라는 마음, 뚝심 있는 카피라이터의 진심 어린 비나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카피라이터가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 아이디어는 제 발로 걸어나온다!
‘비유’로 무장한 이 책의 이해를 돕고자 저자가 끌어들인 것은 꽤나 다양한 종류의 책과 실제 광고와 사람입니다. 빽빽한 텍스트 속에서 만만치 않은 문장들의 촘촘한 긴장감 속에서 한층 읽어나가기의 재미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이런 예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번 선물하면 받은 사람이 영원히 지니고 다닐 선물을 준 적이 있나요? (Have you ever given a gift so wonderful, someone carries it with them the rest of their life? ; 미국 적십자사의 헌혈 권유 캠페인)” 아, 정말 그렇군요. 피를 주는 일이란 평생을 몸에 간직하고 다닐 선물을 주는 것이군요. 피는 반지처럼 빼놓고 다닐 수도 없고 목걸이처럼 풀어놓고 다닐 수도 없으니까요. 죽을 때까지 그(그녀)의 몸속 깊이 살아 있을 지독한 사랑의 선물이군요.
-「카피는 놀라움의 기록이다」 중에서
좋은 카피라이터는 비례식을 잘 푸는 사람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카피라이터 나카하타 다카시仲畑貴志도 그런 사람의 하나입니다. 멋진 비례식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TOTO 비데’의 TV광고 카피가 단연 압권입니다. “여러분, 손이 더러워지면 씻지요. 이렇게 종이로 닦는 사람은 없잖아요. 어째서 그러지요. 종이로는 닦여지지 않기 때문이죠. 엉덩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엉덩이도 씻어주세요.”
-「카피는 비례식이다」 중에서
문득, 이런 제안을 하고 싶어집니다. “하이쿠의 지은이들, 이 한 줄의 거장들에게 명예 카피라이터 자격을 줍시다. 누군가‘ 바우하우스Bauhaus’를 모델로 ‘글로벌 카피스쿨’을 차린다면 이 사람들을 석좌교수로 모십시다. 아무리 얽히고 꼬인 문제라도 쾌도난마快刀亂麻의 해법을 가르쳐줄 사람들이니까요. 그런 학교라면 ‘르나르Jules Renard’ 같은 작가도 모셔야겠지요.”
르나르? ‘뱀’이란 시를 딱 한 줄로 끝내버린 사람이지요. “너무 길다.”
-「카피는 하이쿠를 닮았다」 중에서
저자는 말합니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면 아마도 ‘숨은그림찾기’를 할 때 포기하려던 맨 마지막 ‘거시기’ 하나를 우연히 찾게 되었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은 아닐는지요. ‘십자말풀이’를 할 때, 머릿속에서 그저 ‘거시기’로만 뱅뱅 돌던 한마디가 툭 튀어나온 순간의 개운함 같은 것일지도!”라면서요.
저는 이를 토대로 한 가지를 더 보태보려 합니다. 카피는 무한대다, 라는 비유로 말이지요. 카피라 하면 정해진 답이 없기에 정답으로 가는 무수히 많은 길이 지금도 닦이고 또 닦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예측불허인, 그래서 젊고 그래서 미래인, 그래서 가능성이며 그래서 모든 것인 카피라는 무한대. 그래서 땡땡, 제목 자리에 작정하고 세 개의 구멍을 뚫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피여 숨 쉬라고, 열리라고, 결국엔 채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