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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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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장편 <인간의 힘> 이후 구 년 만에 출간한 성석제의 장편소설. 시골마을에서 빚어지는 맹랑한 소동극의 형식을 빌려 재담과 익살,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세계를 그려낸다. 동시에 그 웃음 뒤에 숨은 우리 사회가 처한 도덕적 파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부정한 권력에 저항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충동이 소설 심층부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궁벽진 강마을의 사람들이 그 마을을 접수하러 간 전국구 조폭들과 일전을 벌인다. 시골마을을 얕잡아보고 의기양양하게 쳐들어간 도시의 조폭들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농락당하고, 반대로 마음을 모아 위기를 돌파하는 동안 강마을 사람들의 이해와 애정은 더욱 깊어진다. 그렇다면, 이 시골마을을 도대체 왜 전국구 조폭들이 접수하려 드는 걸까. 우연히 방문하게 된 강마을. 조폭들에게는 '자연산' 새미가 눈에 띄게 예뻐 보였던 것. 그 새미를 조폭 일당이 슬슬 따라가고 있던 와중 자신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조폭들을 피하려다 그중 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것으로 이 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는 것. 곧, 시골마을 대 조폭 간 전쟁이 벌어지게 된 시발점이 바로 그것. 쳐들어오는 쪽과 방어해야 하는 대치상황의 이야기는 수월치 않은 과정 속에서 결정되고 하나의 목표로 응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피는 섞이지 않은 타인. 마을 사람 각각의 사연은 우리 사회의 숨기고픈, 감추고 싶은 치부 속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강마을 사람들은 서로서로를 이해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였으며, 믿었고, 마을을 건설하고 재배하며 구축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믿음이 매우 당혹스런 사태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모래를 스치는 발소리 : 성석제가 귀환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석제의 ‘웃음’이 귀환했다. 1980년대의 무거움에서 탈주한 1990년대의 작가로 주목받으면서 ‘제가 써놓고 제가 웃는다’라며 능청을 부렸던 작가의 재미나는 이야기가 최신작 『위풍당당』에서 다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창작한 최근작들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입담계의 아트이자 재담계의 클래식”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소설의 진경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진 마을에 사는 주민들과 우연히 부딪히게 된 조폭들과의 싸움에서 자신들의 삶과 터전을 지키려는 소동극을 그린 이 소설이 이토록 우스운 이유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싸움,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혈연이 아닌 상처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인공가족이 된 사람들은 수직적 위계가 아닌 수평적 연합 속에서 분뇨나 벌침, 군불 등으로 조폭들을 제압한다. 허점과 실수투성이인 조폭들 또한 전국구 수준의 조폭들이 아니기에 이들의 원시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가해자나 피해자의 구분도 모호하고, 모두가 모자라는 인물들이기에 이들의 싸움을 볼라치면 어처구니없음만이 있을 뿐이다. 이로써 작가는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이성 중심의 진지함에 선방을 날린다.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아닌 흥진비래(興盡悲來), 즉 아홉 스푼의 웃음에 한 스푼 정도의 슬픔을 통해 작가는 궁극적으로 생명을 중시하면서 자연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포스트모던 비극을 조망한다. 조폭들보다 더 ‘위풍당당’한 불도저, 포클레인, 덤프트럭들이 ‘강이다. 강’이라는 결말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웃을 수 있고, 작가 성석제만이 최고의 경지에서 웃으면서 화를 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그 증거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2년 04월 05일자 - 동아일보 2012년 04월 07일 '문학예술'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2년 04월 12일자 - 조선일보 Books 북Zine 2012년 04월 28일자 - 조선일보 북스 2012년 12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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