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탐욕 앞에 무너지는 허울 좋은 이상을 통렬하게 풍자한 소설. 신.구교 세력 간의 갈등에서 비롯 되어,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30년전쟁의 막바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귄터 그라스 특유의 아이러니와 해학으로 그려낸 비열한 군인들, 그리고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버린 시인들의 모습이 실소와 애처로움을 자아낸다.
1647년, 일군이 시인들이 독일 전국 각지로부터 시골의 조그만 마을 텔크테로 몰려든다. 이 시인들의 목적은 산산조각으로 분열된 조국을 마지막 남은 수단인 '언어와 문학'으로 다시 한번 결합하는 것.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들이 집필해 온 시 낭독회를 가지는 한편, 군주들에게 보내는 평화 호소문을 작성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의 참상 속에서 인간의 기본 권리와 평화를 회복할 것을 주장하려 했던 시인들은 뜻하지 않는 사건에 말려들면서 자신들의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작품의 화자인 '나'는 미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즉 인간의 운명은 현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텔크테에서의 만남>에 등장하는 이 1647년도의 모임은 1947년의 '47그룹'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47그룹이란 1947년에 미군 측 전쟁 포로로 잡혀 있었던 독일 작가들이 무너진 독일 문학의 전통을 재확립시키기 위해 발족한 모임으로, 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문학적 명성과 재정적 지원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