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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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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소설적 기량”, “이 시대의 가장 긴요한 감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데뷔작 <유원>으로 제13회 창비청소년문학상과 제44회 오늘의작가상을 거머쥔, 한국문학의 새로운 얼굴 백온유. 작가 백온유의 두 번째 장편소설 <페퍼민트>가 출간되었다. <유원>에서 비극적인 사건의 생존자 유원이 겪는 윤리적 딜레마와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돌봄과 죽음, 용서와 화해를 가로지르며 한층 확장된 문제의식을 보여 준다.
열아홉 살 시안과 해원이 6년 만에 다시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돌이킬 수 없이 어긋난 두 주인공의 관계와 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감각이 돋보이며,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밝은 자리로 나아가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의지가 빛난다. 전작 <유원>과 함께 나란히 기억될 눈부신 성장소설이다. 페퍼민트 007
: 감염병의 시대가 끝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누군가는 수월하게 회복되었고, 누군가는 크고 작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 있는 사람이 있다.
백온유 작가는 식물인간을 ‘식물적인 인간’이라고 쓴다. 둘은 어떻게 다른가. 그저 다르다. 가만히 다르다. 그 차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으면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백온유 소설만의 조용한 힘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페퍼민트를 머금은 것처럼 혀끝이 아리고 가슴이 차츰차츰 저며 온다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 던져진 십 대의 슬픔과 죄책감과 딜레마가 너무도 생생히 느껴져서다. 『페퍼민트』의 인물들은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으려 안간힘 쓰면서 혼란을 통과해 간다. 점점 단단해져 간다. 자신들의 방식을 새로 만들어 혼돈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 안간힘과 의지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희망을 읽는다. 시안도 해원도 이젠 햇볕 아래에서 조금 더 행복하기를. 너희에겐 그럴 자격과 권리가 충분하다. : 돌봄의 총량이 있는 이 세계에서 어떤 책임은 지독하게 치우쳐진 채로 누군가에게 내맡겨져 있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삶을 지키려 한 어느 삶의 이야기이다. 돌봄의 공백 위에 서서 잠들기를 포기한 ‘영 케어러’ 시안은 묻는다. 돌봄의 위탁은 양심의 위탁인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존엄을 지켜 낸다는 것은 가능한가. 너의 불면 속에서 나의 숙면은 가능한가. 이 소설을 읽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해답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돌볼 것인가.
이 소설은 한 생명의 소실점을 향해 정교한 내면의 언어로 육박한다. 죽음의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데려가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목격시키고야 만다. 생명이 정육처럼 등급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수호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에게도 위탁하지 못할 나의 존엄에 대한 질문을 위한 사전 응답이다. 성장은 벗어남과 떼어 냄을 거쳐 끊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한편 모든 사람은 생명의 이어짐 덕분에 살고 있으며 그 이음의 출발에는 가족이 있다. 이 소설은 끊음을 끊임없이 추적하는 얘기다. 끊어야 자랄 수 있는 주인공 시안이 제발 끊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할 때 느낀다. 그동안 내가 수호한다고 믿었던 것들은 얼마나 엷은 감정인가. 죽이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끌어내고 결국 잇게 만드는 『유원』의 작가 백온유의 두 번째 소설이다. 지금까지 이런 경로의 형이상학을 소설에서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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