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석 (문학평론가) : 기준영은 위치선정에 탁월한 작가다. 비유하자면 그는 1층도 아니고 2층도 아닌 층계참 같은 데 서서 ‘파랑과 빨강을 섞어 만든 보라’ 같은 소설을 쓴다. 거기에서 누구나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다른 삶의 무대가 열린다. 이 무대 위의 인생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미리 짜여진 ‘모델’의 삶을 요구받았으나 끝내 자아의 불길한 해방으로 나아간 진실한 ‘배우’들의 이야기. 이 미니멀한 ‘모험소설’들의 미래는 무한히 열려 있다.
백지연 (문학평론가) : 깊은 밤 찾아온 가장 달콤한 꿈속에서 가장 참혹한 폭력의 심연이 열린다. 기준영의 소설은 삶이라는 이름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무한한 어둠을 우리 앞에 가져다놓는다. 친밀한 관계에 깃든 상처와 환멸을 주시하는 그의 소설에서 집과 가족, 연인과 친구는 떠나온 후에야 온전히 마주 볼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소설의 인물들은 힘겨운 결별과 우연한 만남 앞에서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절감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파국에 대한 불안 속에서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열망한다는 점이다. 소설은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 오랜 기억의 지층을 딛고 새로운 현재를 살려는 존재들의 몸짓을 낱낱이 포착한다. 눈빛과 침묵, 한숨과 속삭임, 미소와 눈물 등 그 어떤 기척과 신호도 사소하지 않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서로 눈을 맞추고 미소를 보내는 순간을 포기하지 않는 이 고독한 소설의 분투는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위안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