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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자, 데뷔작 '영이'에서 파괴적 형식과 고립, 결핍의 심리를 그리는 절실함을 보여주었던 스물다섯살 신인작가 '김사과'의 첫 장편소설이다. '여고생의 친구 살해'라는 단편적인 사건의 이면에서 거대한 사회구조 문제가 겹겹의 인과관계를 구성한다.

학벌지상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한 박지예, 친구의 자살소식에 충격받아 옮긴 대안학교(사회의 축소판 격인)에서조차 적응하지 못하는 미나, 황금만능주의와 허영심에 가득찬 어른들을 흉내내는 수정. 이야기는 삐딱한 십대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학창시절 학생운동과 여성운동을 했지만 지금은 유럽산 가방을 모으는 취미로 허영심을 채우는 미나어머니나, 프랑스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P시의 사교육시장을 살찌우며 과외를 하는 논술선생,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한심한 지식인 미나아버지 들은 형편없는 어른들을 표상한다.

소설은 십대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낸 스타카토식 대화체와 웅변에 가까운 서술자의 문명비판으로 진행된다. 어른들이 세워놓은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대신 철저하게 뛰어넘는 영악한 십대의 내면, 그리고 작가의 발언이 뒤섞여 쏟아내는 세태비판이 당돌하다.

제1부

죽음
미나
P시 학생의 삶
Cry, as much as you can
23:27:46
벽장

제2부
올드타운
파티
Would you be my fucking boyfriend?
새벽, 마트
미나의 집

해설 / 강유정
작가의 말

: 이상한 소설이 도착했다. '도착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소설이다. 간혹 어떤 소설은 작가를 앞질러, 작가도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어떤 운명을 탑재한 채,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처럼 이 세상에 나타난다. <미나>는 십대 소녀의 성장담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집단무의식이 머물고 있는 병리학적 지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누군가를 거듭하여 살해하고 있으며 악몽은 끝내 우리는 놓아주지 않는다. 그곳을 '학교'라 부를 수도 있고 그 누군가를 '미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호명하든 <미나>를 읽는 건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다 읽고 나면 안온한 가짜 리얼리티의 세계에서 너무 오래 살아왔다는 생각에 머리가 띵해지고 주변이 문득 낯설고 기괴해 보인다. 정말 이상한 소설이다. - 김영하 (소설가)
강유정 (문학평론가, 강남대 국문과 교수)
: 이것은 혁명이다. 그리고 반란이다. 김사과의 소설 <미나>는 우리가 질서라고 부르는 기존의 모든 것을 전복하고 무너뜨린다. 이 소설은 '에로틱 파괴어린' 자들의 선언서이며 찌꺼기가 낀 오래된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신의 탄생기이다. 그러니 만일 당신 자신을 상식적인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지금, 당장, 책장을 덮어도 좋다. <미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상이 거대한 음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세상이라 부르는 제도나 질서를 더러운 쓰레기더미로 취급한다. 그들은 세상과 소통할 만한 기본적인 코드를 지우고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한다. 김사과의 소설은 상쾌한 도덕이며 배반의 윤리이다. 파괴를 통한 생성, 지금 한국소설은 유례없던 새로운 도발을 목격중이다. - 강유정 (문학평론가)
: “왜 웃어?”

수상 :2005년 창비신인소설상
최근작 :<헨리 제임스>,<하이라이프>,<[큰글자도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총 64종 (모두보기)
인터뷰 :˝하지만 정말이지 끔찍한 풍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사과 인터뷰 - 2018.08.22
소개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장편소설 『천국에서』, 『0 영 ZERO 零』, 『바캉스 소설』, 단편집 『더 나쁜 쪽으로』, 에세이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 『바깥은 불타는 늪 / 정신병원에 갇힘』 등이 있다.

김사과 (지은이)의 말
글은 한 줄의 흥밋거리에서 시작됐다. 서울에 사는 한 여고생이 친구를 살해. 나는 그 한 줄 뒤에 숨어 있을 여러 겹의 긴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리고 요약하면 단 한 줄에 지나지 않을 공허한 길고 긴 변명을 상상했다. 여러 겹의 긴 이야기와 단 한 줄의 단순한 흥밋거리. 동시에 그 두 가지인 이야기를 원했다. 동시에 두 가지 그 어느 것도 아닐 이야기를 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글은 프라하와 뉴욕을 거쳐 서울에서 끝이 났다. 처음 나는 이 글과 멀리 있는 서울, 그리고 프라하의 일상을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포커스를 잡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붕붕 떠다녔다. 그곳의 삶은 서울의 삶과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풀밭과 햇살의 도시에서 삭막한 도시의, 그것도 학생의 삶을 그린다는 것은 시시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은 삭막한 서울에 있었다. 서울은 황사와 함께 저 멀리 있었다. 아이들은 저 멀리 누런 모래바람의 도시에서 어색한 춤을 추고 있었고 나는 겨우 삐걱거리며 다가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양손으로 책상을 꼭 붙들어야 했다.

그곳에서 나는 다만, 그들과 그들의 도시 그 모든 것의 죄를 사하여주고 싶었다. 무죄의 아이들을 무죄의 땅에 풀어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글에서 아이들이 총에 대한 얄팍한 농담을 주고받은 그날 버지니아에서 조승희가 자신을 포함해 서른세 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무서웠다. 하지만 운명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 운명을 향해 움직여야만 했다. 글을 쓰는 시간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조승희에 대해 생각했다. 그에 대한 뉴스를 읽다 말고 책상 앞에 앉아 울었다. 가끔 주인공을 위해 테스코에 가서 칼을 관찰했다.

글을 끝내던 날 아침부터 밤까지 열두 시간 동안 글에 매달렸다. 작업이 끝나기 세 시간 전 부엌 근처의 등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오랜 작업으로 인한 과열 때문에 랩톱이 타오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랩톱은 멀쩡했다. 나는 냄새를 좇아 부엌으로 갔다. 환한 불빛의 한가운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바라보다가 스위치를 내렸다. 그리고 돌아가 계속해서 글을 고쳤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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