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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내점] 서가 단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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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은 누군가와(특히 약자와) 연대하기에 앞서 그를(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에게는 그에게 적합한 것을, 즉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이해를 우선하지 않는 연대는 일방적인 호혜에 가깝고, 이는 결국 결례와 오만을 내보이는 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
하지만 마리아 투마킨은 그 이해조차 ‘이해해 주려는 사람’이 섣부르게 베푸는 호혜일 수 있다고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는 타인을 향한 태도로써 합당하다. 그러나 투마킨에 따르면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자기 만족적인) 환상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론에 다다를 수 없는 영원한 과정일 뿐이다. 게다가 그 과정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을 더욱 자주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타인과의 연대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면서, 수없이 좌절하면서 기어코 계속 시도하는 것. 이 책은 이러한 주장을 설명하거나 이론화하지 않고 글의 구조 자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인간 각자의 고통을 통해 부서진 기억들은 이 책 속에서 실제로 부서진 형태로 나타난다. 즉 여러 에피소드가 순차적으로 배열되지 않는다. 두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섞여 등장하기도 하고, 여기에 시간 순서까지 뒤섞여 있다. 심지어 몇몇 에피소드의 조각은 백 페이지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시작한 독자는 ‘그래서 그 얘기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갑자기 나온 이 사람은 누구야’라고 생각하며 당황할 수 있지만, 곧 이런 서술 방식이 한 인간의 내면을 쉽사리 추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디자인적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나의 장이 끝날 때쯤이면 그동안 그러모은 파편들이 머릿속에서 조립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이 책 속의 이야기-사건들은 이해되기 전에 구성된다. 혹은 이해를 거부하면서 발생한다. 몇몇 평론가들이 이 책을 읽고 W. G. 제발트를 떠올렸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1.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 당신이 누구이든, 이전에 무엇을 읽었든 간에, 나는 당신이 이 책과 같은 것을 읽어 보지 않았음을 보장할 수 있다. ‘읽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을 경험하는 데 있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당신은 낯선 대상을 만나는 것처럼 그의 언어를 만난다. 당장은 그 윤곽을 추적할 수 없고, 계속해서 그 대상으로 돌아가서 그 독특한 변주에 안착해야만 한다. 투마킨의 업적은 우리가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현상들(언어뿐만 아니라 총기 폭력, 대량 학살, 지속적인 구조적 빈곤 등)을 완전히 낯설게 만든다. : 이 책이 역사와 과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꼼꼼히 조사한다고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 이 책은 우리 나름의 경건함을 찢어 버리고, 우리의 진부함을 탐구하며, 우리가 이 세상을(단어, 사물, 사람, 감정 등 그 모든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도록 몰아붙인다. (…) 투마킨은 사물, 단어, 사람, 문장을 뒤집어서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명료하고 엄숙한 책. 계시와도 같은 책. : 불안하면서도 화려한 에세이. 투마킨은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같은 강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등의 격언을 사용하여 정신적 외상, 지속되는 과거, 언어의 불완전성 등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성찰한다. 그는 청소년 자살과 멜버른 북부의 노숙자 문제와 같은 주제를 다루지만, 그 접근 방식은 결코 감상적이지 않다. : 이 에세이가 독창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만큼 능란하게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러 사회 커뮤니티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을 탐색하고, 사회의 작은 일부에 관해 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커다란 체계 전체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문화일보 2023년 12월 8일자 - 경향신문 2023년 12월 8일자 '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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