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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빛나는 고유명사, 은희경의 신작 『빛의 과거』가 출간되었다. 『태연한 인생』(2012) 이후 7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로 깊이 숙고해 오랫동안 쓰고 고쳤다. 2017년의 ‘나’는, 작가인 오랜 친구의 소설을 읽으면서 1977년 여자대학 기숙사에서의 한때를 떠올린다. 같은 시간을 공유했지만 서로가 기억하는 ‘그때’는 너무나 다르다.

은희경은 갓 성년이 된 여성들이 기숙사라는 낯선 공간에서 마주친 첫 ‘다름’과 ‘섞임’의 세계를 그려낸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을 통해 다양하며 입체적인 여성 인물들을 제시하고 1970년대의 문화와 시대상을 세밀하게 서술한다.

무엇보다 회피를 무기 삼아 살아온 한 개인이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민낯을 직시하여 담담하게 토로하는 내밀한 문장들은, 삶에 놓인 인간으로서 품는 보편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독자 자신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게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는 ‘은희경’이라는 필터를 거쳐 ‘오늘,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중년 여성 김유경이 오랜 친구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게 되며 시작된다. 대학 동창인 그들은 “절친하다거나 좋아하는 친구라고는 말할 수 없”고 “끊어진 건 아니지만 밀착될 일도 없”는, 어쩌다 보니 가장 오랜 친구가 된 묘한 관계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으나 전혀 다르게 묘사된 김희진의 소설 속 기숙사 생활을 읽으며, 김유경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다.

2017
1977―3월, 4월
1977―5월, 6월, 7월
2017
1977―9월, 10월, 11월
1977~2017

첫문장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닌 것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다.

: 은희경이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를 썼다고 하면 우리가 다음과 같은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첫째, 이 소설은 당대의 정치적 공기와 문화적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낼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정치적 중심부가 아니라 (반)주변부에서 더 미묘하게 흔들리는 주인공의 눈으로, 문화의 지역 격차를 예민하게 감지할 수밖에 없는 지방 출신 상경민의 눈으로 그릴 것이다.
둘째, 77학번 신입생의 첫 1년이 그려진다면 이 소설은 여성의 경험적 진실에 충실한 ‘입사 이야기initiation story’의 전형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에 ‘제2의 화자’ 혹은 ‘소설 속 소설’과 같은 장치를 동원해 소설은 본래 ‘경합하는 진실들의 장’임을 입증하기도 할 것이다.
셋째, 이 소설은 또렷한 젠더 렌즈에 포착된 한국 근대성의 성별을 드러낼 것이다. 군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스템의 폭력이 여성 주체의 삶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억압해왔음을 말할 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럿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여럿이 될 것이다.
넷째, 은희경 문학의 힘은 ‘무엇을’에도 있지만 ‘어떻게’에 더 있다. 관념어를 적재적소에 투입하고 빈틈이 없게 구문을 압착하여 서술 대상을 틀어쥐는, 특유의 악력握力 넘치는 문장이 매력적일 것이다. 그런 문장으로 씌어진 인간 연구와 지적 논평을 향유하는 것은 은희경 독자의 특권적 쾌락이다.
그리고 이변은 없다. 기대는 어김없이 충족된다. 은희경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뉴스가 되지만 그 작품이 ‘좋다’는 사실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정세랑 (소설가,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 『빛의 과거』는 1977년에서 2017년까지, 한 기숙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름’과 ‘섞임’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룬다. 출신 지역과 계층적 배경과 성격의 단단하고 무른 부분과 은밀히 간직한 비밀까지 철저히 다른 기숙사생들이, 막 사회에 던져져 한 사람의 성인으로 빚어지던 때는 하필 독재 정권이 가장 강경한 시대였다. 젊음은 폭압 속에 방향을 가늠하고, 여성이기에 그 가늠은 이중적으로 어렵다. 소설은 인물들이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닥친 것을 40년을 오가며 조망하며, 이 은유는 너무나 정교하여 완벽히 조각된 가구가 못 없이 결합하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것과도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읽는 내내 중얼거리고 말았다. 나의 은희경, 우리가 바라보고 걷는 등, 한국 문학의 가장 전율적인 작가……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나와 닮은 목소리를 드디어 만나 그이의 차분하지만 낯설고 독보적인 말에 과녁처럼 관통당하는 일이다.
이 소설은 삶을 아름답게 접어, 접힌 곳을 관통하여 렌즈를 끼운다. 그리하여 삶에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입체적인 투시로 개인과 개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이토록 다른 서로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희비극 속에 중첩된 오해를 해소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내어놓은 예상외의 대답에 마음이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차경희 (문학서점 고요서사, 대표)
: 같은 인물이나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는, 혹은 기억하려 하는 유경과 희진을 통해 그 시절 여학생들의 청춘은 2017년에 다시 소환된다.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안 보이는 대다수”의 서사를 되살려낸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다소 쓸쓸한 질문이 남는다. 그 많던 여성 대학생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이 꾸던 꿈은 어떤 자취를 남기며 사그라들었을까, 혹은 피어났을까. 유경이 닿지 못한 흰빛의 잔상이 세공된 소설 덕분에 오랜 애틋함으로 남을 듯하다.
: 우리는 각자의 인생 속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감독이 됩니다. 그리고 관계하는 세계를 우리 자신의 눈으로 연출합니다. 내가 다른 감독의 작품 속에서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상처를 입히는 조연으로 활약했던 순간이 대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이 책을 덮으며 저는 결코 알 수 없을 저의 필모그래피를 조용히 가늠해보았습니다.
어느 대학교 기숙사 안에서 각기 다른 주인공에 의해 다른 기억으로 남게 되는 ‘여성’이자 ‘여성들’의 서사. 1970년대와 2000년대라는 시절의 격차를 또렷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잊게 만드는 일을 은희경 작가님은 정말이지 눈이 부시도록 써놓았습니다. 언제나, 언제나, 이렇게 계속해서 훌륭함을 거듭하는 작가를 사랑하려면 이쪽에서도 그를 정확하게 찬양하기 위해 덩달아 거듭해서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아무래도 거기에 실패한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은희경이라는 빛을 어떻게 안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 매일경제 2019년 9월 1일자
 - 중앙일보 2019년 9월 5일자
 - 조선일보 2019년 9월 4일자
 - 경향신문 2019년 9월 3일자
 - 문화일보 2019년 9월 9일자
 - 한국일보 2019년 9월 2일자
 - 한겨레 신문 2019년 9월 6일자
 - 동아일보 2019년 9월 7일자 '책의 향기'
 - 국민일보 2019년 9월 8일자
 - 서울신문 2019년 9월 11일자

수상 :2021년 오영수문학상, 2014년 황순원문학상, 2007년 동인문학상, 2006년 이산문학상, 2002년 한국일보문학상, 2001년 한국소설문학상, 1998년 이상문학상, 1997년 동서문학상, 1996년 문학동네 소설상,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타인에게 말 걸기>,<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총 84종 (모두보기)
인터뷰 :패턴, 고독, 매혹의 세계 <태연한 인생> 은희경 작가 인터뷰 - 2012.07.11
SNS ://twitter.com/silverytale
소개 :

은희경 (지은이)의 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나쁜 버릇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소설을 따라가는 일기”라는 제목의 파일에는 이런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그럴듯함,을 경계하자. 가장 비겁하고 천박한 것.
―자꾸 외연을 넓힌다. 힘이 덜 빠진 것이다. 힘을 잘 빼면 안 무거워지는 한편 안 가벼워진다.
―왜 집중이 안 돼? 아무 쓸모 없는 화려한 문장만 공들여 만들고 있다니. 이게 공허한 무기 자랑이 아니고 뭔가.
결국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버리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썼다.
이 책은 나의 여덟번째 장편이다. 10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여섯번째였을 것이다. 8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제목은 “번개 들판”이었겠고 내 주인공은 처음 계획대로 오십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3년 전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내 어머니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연희문학창작촌으로 나를 찾아와 어린 시절 내가 얼마나 의젓한 아이였는지 몇 번이고 얘기해주었다. 그해 가을 잠을 설친 어느 새벽 토지문화관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다. 다음 해 21세기문학관에서 가까스로 이 소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모두 감사드린다.
연재를 끝낸 뒤 원고를 고치는 과정에서도 실패는 계속되었다. 왼쪽 눈의 망막에 구멍이 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책의 저자가 되는 일에 의욕을 잃은 것이 더 큰 실패였다. 이렇게 마칠 수 있었다는 건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뜻이다.
글 쓸 공간을 마련해준 분들과 오래 기다려준 출판사, 나의 독점 피처링 편집자 K, 그리고 문지의 이민희 편집자와 이경진 디자이너께 감사드린다. 정세랑 작가와 신형철 평론가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하나, 무조건 짧게, 빨리 쓰자. 그것이 내게는 가장 새로운 소설이다.
둘, 이해받으려고 하거나 편을 들어달라고 하는 글에는 결코 ‘발견’이 없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신랄한 외부 시선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나는 단지 조금 빠를 뿐이에요’라는 설정은 '단지 조금 느릴 뿐이에요’보다 약간은 신선하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속셈은 뭐지? 결국 변명 아냐? 라고 반박하는 시선이 반대 방향의 장력으로 잡아당겨야만 이야기라는 평면이 펼쳐지고, 그래야만 누군가가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셋, 그 시절 우리 참 치졸하고 나이브했지. 그래도 과거의 나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없다면 현재의 내 삶에 어떤 새로움이 있겠어.
넷, 도대체, 이 망할 장편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아시는지? 끝난 소설은 무조건 해피엔드이다.

2019년 늦여름

문학과지성사   
최근작 :<[큰글자도서] 노랑무늬영원>,<여름의 힌트와 거위들>,<[큰글자도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등 총 1,937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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