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번 황순원문학상은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심사하였으며, 예심은 문학평론가 강경석, 권희철, 백지은, 이경재, 조연정이 맡았고, 본심은 문학평론가 황종연, 우찬제, 정홍수, 소설가 최윤, 김인숙이 맡았다. 본심에서의 치열한 논의 끝에 이번 제14회 수상작은 은희경의 '금성녀'로 결정되었다.
수상작가 특집은 수상작 '금성녀'를 비롯해 수상작가 은희경이 직접 고른 자선작 '고독의 발견', 수상작가가 직접 쓴 연보 '쓸모없는 것의 불온한 동력'과 오은 시인의 수상작가 인터뷰 '세계의 균열, 소설의 균형'으로 구성되어, 은희경 작가가 추구해온 문학세계를 넓고 깊게 살펴볼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최종후보에 오른 8편의 작품들은 한 해 동안 한국문학이 걸어온 의미 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기준영, 백민석, 윤이형, 이기호, 전경린, 전성태, 정이현, 천운영의 작품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현실과 맞닿은 우리 삶,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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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중앙일보 2014년 10월 23일자
수상 :2021년 오영수문학상, 2014년 황순원문학상, 2007년 동인문학상, 2006년 이산문학상, 2002년 한국일보문학상, 2001년 한국소설문학상, 1998년 이상문학상, 1997년 동서문학상, 1996년 문학동네 소설상,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타인에게 말 걸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총 84종 (모두보기) 인터뷰 :패턴, 고독, 매혹의 세계 <태연한 인생> 은희경 작가 인터뷰 - 2012.07.11 SNS ://twitter.com/silverytale 소개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등이 있으며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중국식 룰렛』, 『장미의 이름은 장미』,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등이 있으며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2018년 동인문학상, 2017년 황순원문학상, 2014년 한국일보문학상, 2013년 김승옥문학상, 2010년 이효석문학상 최근작 :<소설, 한국을 말하다> ,<스무 낮 읽고 스무 밤 느끼다> ,<카프카, 카프카> … 총 68종 (모두보기) 소개 :199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 공모에 단편소설 <버니>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수상 :2023년 한국일보문학상, 2003년 신동엽문학상,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후이늠 Houyhnhnm : 검은 인화지에 남긴 흰 그림자> ,<반에 반의 반> ,<에픽 #06> … 총 52종 (모두보기) 소개 :소설가.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엄마도 아시다시피』 『반에 반의 반』,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산문집 『쓰고 달콤한 직업』 『돈키호테의 식탁』 등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신동엽문학상·올해의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수상 :2006년 현대문학상, 2004년 이효석문학상, 2002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최근작 :<소설, 한국을 말하다> ,<스무 낮 읽고 스무 밤 느끼다> ,<소설의 첫 만남 21~30 세트 - 전10권> … 총 58종 (모두보기) SNS ://twitter.com/yihyunchung 소개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연인들》 《안녕, 내 모든 것》, 중편소설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상냥한 폭력의 시대》 등이 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수상 :2019년 이상문학상, 2015년 문지문학상 최근작 :<개인적 기억> ,<장래 희망은 함박눈> ,<[큰글자도서] 붕대 감기 > … 총 79종 (모두보기) 소개 :2005년부터 2020년까지 소설가로 활동했다.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 《러브 레플리카》 《작은마음동호회》, 중편소설 《개인적 기억》 《붕대 감기》, 청소년 소설 《졸업》, 로맨스소설 《설랑》 등이 있다.
수상 :2015년 한국일보문학상, 2012년 현대문학상, 2011년 오영수문학상, 2010년 무영문학상, 2009년 채만식문학상, 2009년 제비꽃서민소설상, 2000년 신동엽문학상 최근작 :<여기는 괜찮아요> ,<푸른색 루비콘> ,<[큰글자도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총 61종 (모두보기) 소개 :196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4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두번의 자화상』 『늑대』 『국경을 넘는 일』 『매향(埋香)』,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산문집 『세상의 큰형들』 『기타 등등의 문학』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국립순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펴내며
황순원문학상이 올해로 14회를 맞이했다. 우리 현대문학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황순원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황순원문학상은, 지난 한 해 동안 창작, 발표된 모든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오천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이번 황순원문학상은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심사하였으며, 예심은 문학평론가 강경석, 권희철, 백지은, 이경재, 조연정이 맡았고, 본심은 문학평론가 황종연, 우찬제, 정홍수, 소설가 최윤, 김인숙이 맡았다. 본심에서의 치열한 논의 끝에 이번 제14회 수상작은 은희경의 「금성녀」로 결정되었다.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수상작가 특집은 수상작 「금성녀」를 비롯해 수상작가 은희경이 직접 고른 자선작 「고독의 발견」, 수상작가가 직접 쓴 연보 「쓸모없는 것의 불온한 동력」과...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을 펴내며
황순원문학상이 올해로 14회를 맞이했다. 우리 현대문학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황순원 선생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황순원문학상은, 지난 한 해 동안 창작, 발표된 모든 중·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오천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이번 황순원문학상은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심사하였으며, 예심은 문학평론가 강경석, 권희철, 백지은, 이경재, 조연정이 맡았고, 본심은 문학평론가 황종연, 우찬제, 정홍수, 소설가 최윤, 김인숙이 맡았다. 본심에서의 치열한 논의 끝에 이번 제14회 수상작은 은희경의 「금성녀」로 결정되었다.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수상작가 특집은 수상작 「금성녀」를 비롯해 수상작가 은희경이 직접 고른 자선작 「고독의 발견」, 수상작가가 직접 쓴 연보 「쓸모없는 것의 불온한 동력」과 오은 시인의 수상작가 인터뷰 「세계의 균열, 소설의 균형」으로 구성되어, 은희경 작가가 추구해온 문학세계를 넓고 깊게 살펴볼 기회가 될 것이다.
또 최종후보에 오른 8편의 작품들은 한 해 동안 한국문학이 걸어온 의미 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기준영, 백민석, 윤이형, 이기호, 전경린, 전성태, 정이현, 천운영의 작품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현실과 맞닿은 우리 삶, 그리고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지금 한국문학의 뜨거운 박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제14회 수상작, 은희경 「금성녀」
제14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은희경의 「금성녀」는, 샛별처럼 반짝거리던 어린 소녀가 평범한 노인으로 늙어간 한 세월과, 더 이상 반짝이는 별이 아니지만 별의 이름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아주 먼 옛날 J읍의 마스코트와도 같았던 “백합과 샛별의 소녀” 유리와 마리 자매가 칠십 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고향을 찾게 된다. 언니 유리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다. 남부러울 것 없이 모범적이고 계획적인 삶을 살았던 유리는 일흔여섯의 나이로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언니가 택한 자살이라는 죽음의 방식은 비밀로 묻히게 된다. 언니의 단정한 삶에 어울리지 않은 퇴장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언니의 죽음을 비교적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마리는 장지인 고향 J로 향하며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된 지난 삶의 몇 장면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어쩌면 언제나 “낯선 곳”을 원했던 자신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이방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는데…….
마리는 저녁나절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땅거미가 깔릴 때 텅 빈 공원에서 뛰노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한순간 세상이 낯설고 시시해지곤 했는데 그런 방치된 느낌이 왠지 좋았다. 열아홉 살 마리가 첫 키스를 한 곳도 그 공원이었다. 초여름이라 마리의 가냘픈 목에서 흘러내린 땀 한 줄기가 교복 앞섶 가슴골로 천천히 흘러내렸었다. 공원 전체를 덮다시피 흐드러진 아카시아 꽃향기가 온 천지를 진동시켰다. 마리는 그를 첫사랑으로 정하고 사랑했다. 어릴 때부터 어쩌면 자신은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마리는 첫사랑의 의미에 스스로 매혹되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략적으로 다가갔던 언니와 정반대로 부정함과 파탄을 선택한 데 대한 도착된 승리감이 그 불꽃에 기름을 끼얹었다. 언니가 생각했듯 눈먼 순정과 어리석은 복종심으로 끌려다닌 건 아니었다. 마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언니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다. 늘 그런 식이었다. 모두가 마리의 삶을 오해했고 그것이 마리를 자신의 삶에서 한 발짝 떨어뜨려놓곤 했다.
―수상작 「금성녀」, 44~45쪽
언니는 그런 말도 했었다. 어떤 때는 시간이란 게 끊어져 있으면 좋겠어. 다음 같은 건 오지 않고 모든 게 그때그때 끝나버리는 거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때 가서 잘하면 되니까, 지금 제일 잘하려고 안달 안 해도 되잖아. 그때 마리는 언니가 마리를 오해하듯 자신 역시 언니를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뭔가를 잘 안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그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일 뿐이었다. 때로 마리는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조차 오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야말로 자기 인생의 이방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리는 늘 낯선 시간을 원했고 낯선 곳으로 데려다주는 남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진정 낯선 곳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제 마리에게 남은 낯선 곳은 뒷걸음질 쳐서 발에 닿는 어떤 시간의 시원에 있는 것일까.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아주 먼 옛날 유리와 마리 자매는 백합과 샛별의 소녀였다.
―수상작 「금성녀」, 50~51쪽
그해 겨울 서울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 기록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러갔고 숱한 비밀들이 밝혀졌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자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을 품고 있지만 그중에는 아주 먼 곳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별도 있을 것이다.
―수상작 「금성녀」, 52쪽
심사를 맡은 황종연 문학평론가는 “동서고금의 위대한 소설의 근저에는 예외 없이 삶과 의미, 경험과 본질을 결합시키려는 열정이 있다. 은희경의 「금성녀」는 바로 그러한 형이상학적 열정을 품고 있는, 최근 한국소설에서 유례가 드문 작품”이며, 또한 “마리라는 인물의 그녀의 연배의 한국인 여성의 전형과 거리가 멀다는 점,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 세대와 계급의 역사를 함축하지 못한다는 점은 불만이다. 삶과 의미의 결합은 미완이다. 그러나 상실과 고독의 운명을 수락한 그 노년의 심경은 아름답다. 명멸하는 삶의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모이고 흩어지는 순간이 그 심경의 거울에 영롱하게 비친다. 마리 덕분에 부재의 어둠 속으로 사라질지 모를 존재의 세목이 애틋하게 구원된다. 마리와 같은 사람이 실재한다면 그녀는 언젠가 여느 별과 마찬가지로 밤하늘에서 사라질 테니 그건 정녕 쓸쓸한 일이다.”고 심사평을 남겼다.
2014년 더 깊어진 한국 단편소설의 정수를 만나다
최종후보작 8편 … 기준영, 백민석, 윤이형, 이기호, 전경린, 전성태, 정이현, 천운영
기준영, 「이상한 정열」
삶의 표면 아래에는 예측 불가능한 리듬으로 분출하는 충동이 잠복해 있다. 스스로의 혼란에 도취되기 쉬운 젊음의 시기나 차라리 어서 빨리 파국의 결론이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절망의 시기에도 물론 그렇지만 안정기에 접어든 듯한 성공한 인생의 후반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충동은 애써 길들여놓은 삶이 짐승처럼 굴며 그 삶의 주인에게 짖어대거나 그를 물어뜯게 만들고 가까스로 수습해놓은 혼란을 더욱 엉망으로 헝클어뜨리며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아닌 파국을 들이밀기도 한다. 하지만 정확히 거기까지가 삶의 과정이다. 충동을 비난하고 그것을 삶으로부터 떼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충동을 모른 체하면서 세계의 안녕을 도모하는 모든 시도는 거짓된 것인데다 부질없는 짓이다. 좋은 소설은 뜻밖의 순간에 충동이 분출하는 장면들을 성실히 관찰하고 그것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뛰어난 소설은 삶의 일부인 충동이 무기력한 잠으로부터 삶을 깨어나게 하고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발견하면서 더 멀리 전진한다. 「이상한 정열」이 더 멀리 전진하는 쪽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권희철·문학평론가
백민석, 「수림」
“스스로 털어놓기 전에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기노출증에 시달리는 남자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자가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장마를 가까스로 통과한다. 그들이 왜 그런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대신 작품은 문제가 문제로 되는 방식 혹은 어떤 파국에 대한 히스테리적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말한다. 어쩌면 진짜 망상은 매끈하게 정돈되고 안정된 ‘정상인’들의 삶 자체인지도 모른다는 듯이 말이다. 집안의 모든 창을 남김없이 닫아거는 장면으로 시작해 주거환경 개선 봉사에 나선 주인공이 열린 창밖으로 먼 곳을 내다보며 끝을 맺은 이 단편은 그러나 “구름의 귀퉁이가 하얗게 달아 있다면 어딘가에 해가 있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이것이 희망의 전언인지 아닌지는 단순치 않지만 문명에 짓눌린 폭발 직전의 야성만큼은 손에 만져질 듯 싱싱하다.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의 확실한 복귀를 알리는 소설적 선언이 아닐까.
―강경석·문학평론가
윤이형, 「루카」
윤이형이 변신중인 듯하다. 이 우주와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로 우회하였던 그가 지구의 중력 속을 걷고 있다. 무엇보다도 설정이 직설적이라는 말인데, 그 효과인지, 배치는 효율적이고 진술은 간명하다. 누구나의 감정을 ‘이들’의 이야기로 꾸며내는 게 보통의 사랑 이야기라면, 이들의 특수한 정황을 누구나의 사랑으로 ‘알게’ 하는 것이 「루카」의 특징이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소수들끼리 더 잘 통하는 건 서로 같다는 생각 때문이지만, 그들 역시 같지 않다. 그들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은 또 한 번 고통스럽다. “그것은 차별이나 소수자 같은 말들과는 정말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너는 내 세계에서 소수자였고 나는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고 싶어 하는 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수인 나는 소수 안에서 다수와 다르지 않고 소수 안에서 너는 또 소수다. 다수의 소수, 소수의 다수, 소수의 소수, 혹은 사랑의 진상, 허상의 사랑, 그리고 믿음의 실상 등에 대해 한동안 생각이 머물지만, 이 소설에서 마침내 가장 선명하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날카롭고 무거운 관계들과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둡고 뜨거운 눈물이다. 한층 성숙해진 어조가 정확히 한몫 했다는 말도 빼먹지 말아야겠다.
―백지은·문학평론가
이기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는 소도시 P읍에 사는 여교사 윤희가 어느 날 갑자기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특별한 일로부터 서사가 시작된다. 윤희의 남자친구 종수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 선배인 강민호를 찾아온다. 서울의 대학에서 시간 강의를 하고 있는 강민호는 아버지와 친척 사이의 재산 분쟁을 해결할 겸 P읍을 찾아 특유의 ‘교회 오빠적인 태도’로 윤희의 개종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그 세심한 배려의 태도가 사실은 자기애의 그럴듯한 포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강민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타인의 곤궁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멋진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이 작품은 ‘나’와 작은 아버지, ‘나’와 윤희, 종수와 윤희 사이의 인간관계를 통하여 우리의 기억, 주장, 관념 등이 결코 확실한 진실일 수 없다는 삶의 아이러니한 속성까지도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로 담아내고 있다.
―이경재·문학평론가
전경린, 「맥도날드 멜랑콜리아」
「맥도날드 멜랑콜리아」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형식이 ‘전락(轉落)’임을 분명히 한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난관들이 숨통을 조여와 삶은 점점 더 위축되고 일그러진다. 상황이 바뀔 것 같은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일시에 추락하기보다 차라리 삶 자체를 최대한 절제해 추락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현명하다.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삶을 절제하는 수모를 지속적으로 겪는 사람의 내면에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구멍이 파인다. 그녀는 그것이 소용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정크푸드를 밀어넣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이 ‘폭식’의 시대에 육체와 함께 병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어서 내면에 구멍이 뚫린 사람은 패스트푸드와 함께 “대규모의 재난과 공공의 실패와 타인들의 불행”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뉴스를 함께 먹는다. 전락의 시대에 고통받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 나보다 더 격렬하고 처참하게 전락하는 인생들이 의외로 허다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이 자학적인 자위행위야말로 폭식의 실상이다. 그렇게 해서 뉴스와 정크푸드를 함께 삼키는 맥도날드가 전락의 시대를 대표하는 장소가 된다. 그곳에서는 건강한 삶의 리듬을 유지하는 행운을 움켜쥔 몇 안 되는 사람들 그리고 처절하게 절망하며 삶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죽음의 바다로 뛰어든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서성인다. 겉보기에 그들에게 돌아가 잠들 작은 방이 있다 하더라도 맥도날드에 드나드는 사람들 그러니까 결국 우리 모두는 다 제 인생의 노숙자이자 행려병자이다. 제 인생의 노숙자이자 행려병자들이 겪어야만 하는 전락의 일상적 쓰라림, 그것이 오늘날의 우리의 보편정서 ‘맥도날드 멜랑콜리아’이다.
―권희철·문학평론가
전성태, 「성묘」
전성태의 「성묘」의 배경은 적군묘지이고, 주인공은 적군묘지를 돌보며 적군을 애도하는 ‘승리상회’ 주인 박 노인이다. “젊어서 총과 포탄에 쓰러진 원혼들”이 “고향 어름에도 못 가고 적지 북향에 묻혀” 있는 적군묘지의 모습은 그 자체로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동시에 박 노인의 애도 행위는 작가의 소설 쓰기에 대한 일종의 비유로서 읽을 수 있다. 박 노인은 병든 아내의 고통을 앞에 두고 자신의 행위를 심각하게 되돌아보는데, 이러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자기성찰과 연결시켜 이해해볼 수 있다. 작가 전성태 역시도 그동안 전쟁과 분단으로부터 비롯된 여러 가지 사건들에 나름의 의미부여를 해온 대표적인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전성태는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린 자들에게 적당한 이름을 붙여 주고는 했던 것이다. 박 노인은 자신의 애도 행위와 자신의 삶 전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만, 끝내 애도 행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이 끝나지 않은 애도 행위 속에서 전성태 문학의 끝나지 않을 정치성과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경재·문학평론가
정이현, 「영영, 여름」
정이현의 「영영, 여름」은 한국인 엄마와 일본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제3국에서 북한의 소녀를 만나 짧고도 아픈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작품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부서지기 쉬운 것들, 부서지지 않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서지지 않는” 외적 조건들, 이를테면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국적과 언어, 지역, 외양 등의 조건이,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내면과 만나 어떤 균열을 일으키는지를 섬세한 에피소드와 함께 그려내고 있다. 한 소녀의 성장 에피소드를 그리는 듯 읽히지만, 일본인 남자와의 국적을 초월한 사랑을 기꺼이 운명으로 받아들였으나 그것이 결국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리에 엄마의 예민한 내면과, 역전된 듯한 모녀관계를 관찰하는 일도 흥미롭다. 정이현 특유의 단정한 문장과 흥미로운 세부표현들, 그리고 안정적인 전개가 눈에 띄는 ‘잘 읽히는’ 소설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외톨이 왕따 소녀였던 리에가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국에서 잠시나마 충만한 우정을 나누는 메이가 북한 권력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영영, 여름」의 또 다른 성과를 보여준다. 한국소설에서 남북관계가 더 이상 특수한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만 그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소녀들의 순수한 우정이 증명하고 있다.
―조연정·문학평론가
천운영, 「다른 얼굴」
얼굴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다. “선량한 눈을 가진” “순한 웃음의” “상냥한” 얼굴 혹은 “범죄를 저지르고 들킨 자의” 얼굴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지어진 것, 생겨난 것 혹은 가꾸어진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문화적’이다. 완벽한 정원을 가꾸는 일이 곧 완벽한 삶이 될 수 있는 이의 얼굴은 얼마나 ‘문화’로 충만한 것인가? 문화국 독일에서 삼십 년 간 세금도 잘 내며 살았고, 한국 사람은 못 알아봐도 독일 사람은 모두 인정해 줄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꽃을 사랑하지만 꽃을 먹는 달팽이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민자로서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 자랑스럽지만 아직 문화가 부족한 한인회의 작태는 경멸스럽다. 문화적 인간이란 모름지기 ‘균형’ 잡힌 식견과 태도를 지닌 교양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 ‘균형’을 위해, 달팽이를 죽인 계집애를 세게 쥐고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호되게 몰아붙인 것이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물론 이 장면이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문화의 얼굴에 감춰진 광기의 비명으로 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는 일상적 에피소드처럼만 보이는 삽화들과 소소한 스케치처럼만 보이는 대화들이 모두 각각 제자리에서 일관된 주제에 협조 중이다. 그 주제는? 문화적인 것 뒤에 다른 (저속한) 얼굴이 숨어 있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이미 불균형하고 저속한 것이 ‘문화(우월주의)’의 얼굴이라는 것.
―백지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