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되는 진 리스의 국내 초역 작. 출간 당시 문학적 기법과 주제가 시대에 앞선 탓에 주목받지 못하다가, 1958년 BBC에서 극화되어 소개되면서 비로소 명성을 날렸다.
1930년대 파리의 허름한 호텔 방. 상처로 얼룩진 런던의 삶으로부터 도망쳐 온 소피아에게 잔인한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여자를 농락하는 남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세상을 하직할 생각'을 하는 그녀에게 다가온 젊은 남자 그네. 그러나 남자를, 인간을, 세상을 믿지 않게 된 소피아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르네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한밤이여, 안녕>은 관습적이고 상상력이 결핍된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되는 가엾은 영혼의 이야기다. 남성 위주 세계의 희생물, 남성을 신뢰할 수 없는 여성을 대표하는 여인 소피아는 진 리스의 여러 여주인공들 중 가장 절망적으로 그려지지만, 가장 강한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진 리스는 젊은 시절, 코러스 걸, 그림 모델 등 사회에서 천대받는 직업들을 전전했고, 세 번의 결혼으로 인한 아픔이 있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자신의 소설 속에 사실적으로 녹여냈다. 그들이 얼마나 부당하게 대우받는지, 경제상황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일차적 그림이 아니라 그로 인해 그들의 정신과 감정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그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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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한밤이여, 안녕>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세트 4 - 전10권> … 총 70종 (모두보기) 소개 :본명은 엘라 궨덜린 리스 윌리엄스(Ella Gwendolyn Rees Williams). 영국령이었던 도미니카 수도 로조에서 웨일스 의사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계 크리올(서인도제도 흑인과 유럽계 백인의 혼혈)로 농장을 물려받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열여섯살에 홀로 영국으로 건너가 퍼스 여학교에 다니지만, 낯선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이방인으로서 따돌림을 당한다. 배우가 되고자 입학한 왕립연극학교 역시 언어 문제로 중도에 그만두고 코러스걸, 마네킹, 누드모델 등의 일을 전전한다. 이 시기에 영국에서 느낀 이질감과 절망, 경제적으로 의존했던 부유한 연상의 연인과 헤어진 뒤 낙태수술을 받은 경험 등을 네권의 노트에 기록해 20년 뒤 『어둠속의 항해』에 고스란히 녹여낸다. 리스는 이 작품을 가리켜 “빠르고 쉽게 그리고 자신 있게 쓴 유일한 책”, “가장 자전적”이며 “가장 좋아하는” 소설, 나아가 자신의 “최고작”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D. H. 로런스를 발굴한 비평가이자 소설가 포드 매덕스 포드의 눈에 띄어 1924년 단편 「빈」을 그가 주관하는 『트랜저틀랜틱 리뷰』에 실으면서 데뷔한다. 이후 1920~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창작에 전념해 단편집 『왼쪽 둑』(1927), 장편 『사중주』(1928), 『매켄지 씨를 떠난 후』(1931), 『어둠속의 항해』(1934), 『한밤이여, 안녕』(1939)을 연달아 펴낸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발발 후 20년 가까이 은둔하면서 사망설이 돌기도 한다. 1957년 BBC에서 라디오극화한 『한밤이여, 안녕』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평단과 대중 양편에서 재조명을 받고, 1966년 『광막한 싸르가소해』를 발표해 W.H.스미스 문학상과 하이네만상을 수상한다. 그밖에 단편집 『호랑이는 멋지기나 하지』(1968)와 『한잠 자고 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1976), 자전적 산문집 『나의 날』(1975) 등의 작품이 있다. 1978년 평생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훈장(CBE)을 수훈했고, 이듬해에 집필 중이던 자서전 『좀 웃어봐요』를 채 끝내지 못한 채 여든여덟을 일기로 영국 엑서터에서 숨졌다. 카리브해와 영국 문학의 경계에 위치한 그의 작품들은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파격적인 형식실험 등 여러 측면에서 오늘날까지 활발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사진출처 : ⓒ Jean Rhys Limited
최근작 : … 총 6종 (모두보기) 소개 :성신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서로는 『한밤이여, 안녕』,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영미여성소설론』, 『영미문학의 이해』, 『영국소설사』 등이 있다.
'가장 훌륭한 20세기 영국 작가' 진 리스가 그리는 또 한 명의 상처받은 여인!
세상에서 버림받은 여인의 절망에 찬 독백에 가슴 먹먹한 아픔을 느낀다.
§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되는 진 리스의 국내 초역 작.
한밤에게 보내는 아침 인사
한밤이여, 안녕!
나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낮은 내게 싫증이 났다지만,
내가 어찌
낮에게 싫증을 느끼겠어요?
태양빛이 너무도 안온해서
나 거기서 살고 싶었지만,
아침은 나를 원치 않는대요. 지금은.
그러니
낮이여, 잘 자요!
-에밀리 디킨슨
“Good Morning, Midnight”, 즉 한밤에게 보내는 아침 인사가 바로 <한밤이여, 안녕>의 원제다. 더는 자신을 원치 않는 낮에게 이별을 고하고 한밤에게 돌아간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 첫 구절을 따온 제목 ‘한밤이여, 안녕’은 소설의 내용이 에밀리 디킨슨 시의 그것과 매우 근접해 있음을 암시한다. 묘하게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활동 당시에는 그 내용과 기법이 ‘시대를 앞선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실조차 일치하는 디킨슨과 진 리스. 리스는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지닌 매력적 가치와 비운의 운명을 바로 이 디킨슨의 시를 통해 대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의 가장 깊은 곳, 한밤을 향해 아침 인사를 건네는 뜻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바로 이 소설을 이해하는 방향키일 수 있다. 주인공에게 한밤은 무엇을 뜻하는지, 안녕이라는 인사가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그 인사를 건넬 때 주인공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이 소설이 조금씩 선명하게 잡힐 수 있으리라.
막다른 골목에 선 여인, 소피아
1937년 파리의 늦은 가을. 영국 여인 소피아가 현재 있는 곳. 어떻게 이곳에 왔을까?
결혼.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의 일방적인 떠남으로 끝을 맺다. 출산, 태어나 울지 않은 아이는 5주가 지나 죽는다. 십사오 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결혼을 하고 희망에 차서 남편과 함께 파리에 왔을 때의 일이다. 그 뒤로 소피아는 런던에 돌아갔고 거기서도 사람들의 냉소와 비난의 시선이 이어졌다. 도망치듯 다시 돌아온 파리. 하지만 그녀가 마주하는 것은 부당한 취급과 사람들의 냉대, 흑심 가득한 남자들의 음흉한 눈빛이다.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 옆방에 사는 흰 가운의 사나이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기분 나쁜 추파를 던지며 과거에 자신을 농락한 남자들을 연상시킨다. 이 가운데서도 그녀에게 따뜻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은 있다. 그녀의 슬픔을 다독여주고,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해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는 몇몇의 사람들. 특히 불현듯 그녀에게 다가와 사랑을 고백하는 젊은 남자 르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을 도와달라며 소피아에게 접근하지만, 점점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말을 하며 그녀의 방에 들어가길 원한다. 하지만 더는 남자를, 인간을, 아니 세상을 믿지 않게 된 소피아는 그가 하는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날 르네는 오랜 시간을 그녀와 함께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보여 주고 둘 사이의 틈을 좁히려는 시도를 하는데, 결국 그날 밤 그녀의 호텔 방 앞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자신이 완고하게 거부했던 남자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그녀는 지금까지의 모든 배신과 상처에 대한 보상을 느끼면서 말할 수 없이 기뻐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두 팔로 감싸 안은 르네를 방으로 초대한 순간, 소피아는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이며 그를 힘겹게 다시 방 밖으로 내보낸다. 그의 진심을, 아니 자신을 다시 불신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가 나간 후에 소피아는 후회로 절망하며 다시 돌아오라고 마음속으로 크게 외친다. 그러나 침대 위에 발가벗은 채 웅크리고 누워 있는 그녀를 찾은 사람은 자신을 불쾌한 눈으로 쳐다보았던 바로 그 옆방 사나이였다. 사나이가 늘 입고 있는 흰색 가운을 확인한 소피아는 “그래요, 네, 네…….”라고 말하며 그를 두 팔로 감싸 침대로 끌어내린다.
독특한 문학적 기법으로 설득력을 획득한 작품
<한밤이여, 안녕>은 남편과 연인들로부터 버림받고 외롭게 살아가는 한 여인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상상력이 결핍된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희생되는 가엾은 영혼의 이야기다.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성 위주 세계의 희생물, 남성을 신뢰할 수 없는 여성을 대표하는 여인 소피아를 그리고 있는 <한밤이여, 안녕>이 1939년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작품을 외면했다. 이전에 발표되었던 리스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일방적 희생자나 피해자, 혹은 성적으로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사람으로 설정된 나약하고 무력한 여성 주인공의 모습이 그 당시 여성들의 입맛을 자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와 배반의 테마, 그리고 여성의 점진적 추락의 원인을 그리는 기법이 그 시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독특하고 앞선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1958년 BBC 방송을 통해 이 작품이 극화되어 소개되었을 때, 진 리스는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명성을 날렸으며, 1966년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가 출판되었을 때는 “가장 훌륭한, 살아 있는 영국 작가”로 세계적인 칭송을 받았다.
그렇다면 한 무명작가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요소는 무엇인가? 리스는 당시에 품위 없는 것으로 간주된 대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에 천착한다. 헐어빠진 방들이 뿜어내는 냄새, 수시로 변하는 태양빛의 밝기, 싸구려 옷감의 불완전함, 미소가 함축하는 다양한 의미, 몸의 주인을 고립시키고 당황케 만드는 육체의 욕구나 고통 등, 감각을 통해 얻은 느낌의 생생한 파편들은 독자들에게 덤벼들고 돌진한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끊임없는 시간의 그물과, 여기에 얽힌 의식의 흐름과도 연결된다. 양순하고 명료한 한 순간이 지나면 다음엔 괴로운 자아인식으로 무너지는 순간이 오고, 다음엔 과거 속으로 혹은 꿈의 세상으로 갑자기 끌려 들어가며, 그렇지 않으면 너무도 재미없고 끔찍해서 병든 상상력의 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무력한 재검토로 가는 과정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유기적 응집력을 갖고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교차되고 엉키면서, 소설에 속도감을 부여하고 개연성을 이룩하며 독자의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리스는 멜로디와 리듬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문장의 음악성에 매달린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거나 한 단어에서 파생하는 동질적이고 이질적인 다양한 성격의 단어들 첨가하여 제시함으로써 문장에 음악성을 부여한다. 이것은 독자의 의식 속에서 보편성을 밀어내고 정상의 경계를 벗어나게끔 한다. 즉 모든 것을 아우르는 리듬은 시간의 넘나듦과 다자관점, 인상주의적 내적 독백, 사회성이 강한 희극적 요소,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한 탄식을 한데 묶어준다. 리스는 이를 통해 ‘다름’에 대해 독자와 ‘한마음’으로 소통하기를 바라는 자신의 욕구를 표출한다.
인간에 대한 진실한 이해의 끈이 되다
소피아는 진 리스의 여주인공들의 궁극적 모습이며 남성에게서 받은 많은 실망과 모욕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리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진 리스는 젊은 시절, 코러스 걸, 마네킹, 그림 모델 등 사회에서 천대받는 직업들을 전전했고, 세 번의 결혼으로 인한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경험들을 자신의 소설 속에서 사실적으로 녹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주인공 소피아는 마네킹 걸, 옷가게 보조 여직원, 임시 여행가이드로 일했고, 그마저도 부당한 이유로 인해 해직당하곤 했다. 리스의 작품에서 사회의 약자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외관적이고 표면적인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부당하게 대우받는지, 그들의 경제상황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일차적 그림이 아니라 그로 인해 그들의 정신과 감정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그 변화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너무도 외곬으로 치닫는 상황 판단, 자신에 대한 세상의 시선을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왜곡시키는 정신적 굴곡 상태, 평범한 세상에 대한 적개심, 끝 모를 자기 비하 등 이해하기 힘든 주인공의 심리는 이 작품이 단순히 한 개인의 인생에 대한 묘사가 아님을 시사한다. <한밤이여, 안녕>은 넓게 퍼져 있는 사회적 부정의는 물론 그와 맞먹는 성차별 및 성적 부정의를 함께 다루고 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여주인공이 그녀만의 치명적 결함 때문만으로 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사회의 결함 때문에 파멸된다는 독특한 상황과 맞대면하길 요구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숙하게는 이 모든 사회적 상처를 안고 있는 천덕꾸러기 소피아를 온전히 보듬을 독자의 따뜻한 시선에 대한 작가의 요구가 자리한다. 주인공 소피아가 르네에게 마음으로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르네가 자신의 목에 난 상처를 보여 주고 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부터다. 그게 비록 육체적인 것일지라도 마치 부유하듯 합쳐지지 못하고 떠돌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감의 끈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인간 사이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녀를 봄으로써, 그녀의 상처를 읽음으로써, 그녀의 아픔을 마음으로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고, 우리 모두가 다르지 않고 동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소피아가 보여 주는 그녀의 세계는 낯설지만 기분이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다. 누구든 외로워 보았거나, 주저해 보았거나, 두려워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의 한 단면을, 평범하고 포착하기 어려운 불행한 인생의 단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때문에 놀라보았거나 매일의 인생 속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경이롭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이 작품 안에서 그런 것들을 다시 만남으로써 충격의 순간을 실감하고 재발견한다. 그래서 <한밤이여, 안녕>은 분열되고 우울하며 심지어 초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매우 강력하다. 이 작품은 한밤에게, 어둠에게, 깊이를 알 수 없는 강과 같은 삶에게 아픈 아침 인사를 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풀어보라는 동질감에 대한 리스의 도전 어린 질문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시작.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이 갖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