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행동과학 범죄학자인 도나토 카리시가 단 한 권의 작품으로-그것도 데뷔작으로-유럽은 물론 국내 스릴러소설 독자를 사로잡은 건 놀라운 사건이었다. 사람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악의를 부추겨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희대의 사이코패스를 선보여 내로라하는 스릴러 마니아들의 찬사를 받은 《속삭이는 자》의 후속작 《이름 없는 자》는 ‘속삭이는 자 사건’ 7년 후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자였던 여형사 밀라의 이야기다. 사건이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력반에서 실종전담반으로 자리를 옮긴 밀라는 스스로 모습을 감췄는지,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전력질주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노력을 비웃듯 실종자들은 잔혹한 살인마로 돌아온다. 그들의 살해 동기는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아귀가 착 들어맞지 않아 밀라는 혼란스럽다.
자기 새끼를 위해 어린 얼룩말을 숨통을 끊는 암사자는 선인가 악인가. 지구상에 단 한 사람만 산다면 그 사람은 선할까 악할까. 악이란 그 반대편에 선한 누군가가 있어야 비로소 명확하게 실체를 드러낸다는 ‘악의 논리’를 접한 독자가, 절대악이란 사실 언론과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허구가 아닐까 의문을 품기 시작할 때 《이름 없는 자》의 마지막 반전이 시작된다.
이창래의 새 소설이 디스토피아 SF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린 소설은 아마도 코맥 매카시의 <로드>였지 않을까. 서부의 잔혹극으로 유명한 코맥 매카시는 평소와는 달리 대재난 이후의 절망적인 세계를 설정하면서도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로드>의 엄혹한 세계 속에서는 장르의 구별이 소용 없었다. <로드>는 이전까지 장르 소설에 도전하지 않았던 작가가 뒤늦게 장르 소설의 문법을 차용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평소와는 다른 세계에서도 그냥 자기가 잘 하는 걸 보여줄 것. 안그러면 작가는 흔해빠진 여행기 같은 미지근한 작품을 내놓게 된다.
이창래의 신작 <만조의 바다 위에서>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아는 작가가 쓴 소설이다. 이창래는 근미래의 우울한 세계를 거닐면서도 기존 작품들의 장점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세계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살피는 사변적인 표현들은 단정한 문장들을 통해 균형을 잡는다. 설정 자체는 계급제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YA소설들과도 별다를 바가 없지만, 그 안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읽어내고 이해하고 움직이는 인물들에게서는 거의 품격이라 할 수 있는 우아함이 느껴질 정도다. 압도적인 폭력과 절망의 용광로 속에 장르의 구별을 녹여버린 <로드>와는 달리, 성배 탐색처럼 정확한 목적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만조의 바다 위에서>가 쾌감을 안겨주는 페이지 터너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창래의 작품을 접해 본 독자들은 어차피 그런 데 연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되려 종말을 향해 서서히 가라앉는 미래의 슬픈 풍경을 좀더 오래, 느리게 읽어내고 싶어질 것이다.